실미도의 블로그
제21차 15구간(하늘재-이화령) 본문
♣♣♣ 제21차 (이화령-하늘재) ♣♣♣
o 산행일시 : 2013년 04월 19일(금) - 20일(토) (무박)
o 산행인원 : 그린산악회 백두대간5기 20명
o 산행코스 : 하늘재-(1.82)-탄항산(월항삼봉)-(1.75)-주흘산갈림길-(1.5)-동암문-(3.41)-마패봉
-(0.91)-조령3관문-(1.0)-깃대봉-(5.1)-조령산-(0.75)-조령샘-(2.12)-이화령
o 산행거리 : 18.36㎞(종주누계거리 521.11km / 백두대간거리 734.58km / 70.94%)
o 산행시간 : 02시40분 - 14시20분 : 11시간40분
o 산행날씨 : 눈
▼ GPG 상세정보('송암자'님)
▼ GPG 궤적('송암자'님)
▼ 고도표('송암자'님)
☞ 주요지점 통과시간 및 소요시간
구 간 명 |
도 착 |
소요시간 |
누계시간 |
비 고 |
하늘재 |
02:40 |
|
|
|
모래산 |
02:53 |
13분 |
13분 |
|
석문 |
03:12 |
19분 |
32분 |
|
탄항산정상 |
03:27 |
15분 |
47분 |
|
평천재 사거리 |
03:49 |
22분 |
1시간09분 |
우측-동암문, 좌측-평천리, |
959봉 갈림길 |
04:11 |
22분 |
1시간31분 |
하늘재 3.6k, 부봉삼거리 1.0k |
부봉 갈림길 |
04:41 |
30분 |
2시간01분 |
하늘재 4.6k, 마패봉 4.0k |
동암문 사거리 |
04:51 |
10분 |
2시간11분 |
←제3관문3.9km/2시간,↑부봉 1.3km/30분 |
북암문 사거리 |
05:39 |
48분 |
2시간59분 |
←지릅재 1.7km, ↑부봉 3km |
마패봉(마역봉, 920m) |
06:08 |
29분 |
3시간28분 |
|
조령3관문 |
06:43 |
35분 |
4시간03분 |
아침식사후 08:10분 출발 |
깃대봉 갈림길 |
08:24 |
1시간41분 |
5시간44분 |
깃대봉 0.42k, 조령3관문 0.8k |
760봉 |
09:05 |
41분 |
6시간25분 |
신선암봉 119신고안내 제10지점 |
갈림길 |
09:29 |
24분 |
6시간49분 |
←제3관문, ↑제2관문, 조령산 3.2k |
신선암봉 |
10:50 |
1시간21분 |
8시간10분 |
|
마당바위 갈림길 |
12:09 |
1시간19분 |
9시간29분 |
|
조령산 |
12:57 |
48분 |
10시간17분 |
|
이화령 |
14:20 |
1시간23분 |
11시간40분 |
|
총 산 행 시 간 |
11시간 40분 |
|
[대간마루금을 함께 걷고 있는 "송암자" 님의 산행후기를 '대간길'카페에서 옮겨옴]
아~! 조령산!
유비면 무환이요, 무비면 유환하리라는 ...
또한 리더의 판단력과 대원들의 단결력...
그리고 침착한 대응...
위기대처능력이 얼마나 좋았는지...
대장과 대원들간의 끈끈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해 준
중요한 구간으로 두고두고 나의 뇌리에 깊이 남을 ...
다시 한번 오기대원들이 아주 아주 자랑스럽게 여겨진 구간...^^
그 시작은 여느 때와 똑같이 지극히 평범했다.
주초에서 주중으로 가면서 월악산 국립공원 날씨에 대해 주시하고 있는데,
주말날씨예보가 비로 바뀐다.
그러나 비의 양은 5~9mm...
최근 기상대의 활약은 산행을 사전에 준비하는 차원에서
유비무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특한 것...ㅋㅋㅋ
그러나 그러한 믿음으로 인해 다가올 고난을 미리 예견하지 못하고...ㅠㅠ
일단 비가 온다니 우비를 챙기고...
지난 구간에 이어진 구간이니 아이젠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듯...
구간도 짧고 중간에 조령3관문에서 매식한다고 했으니 도시락도 필요없고...
날씨도 새벽엔 약간 쌀쌀하겠으나 해가 뜨면서 점점 풀리면 대체로 무난할 듯...
그러나 나는 다가오는 5월10일 있을
지태(지리산태극종주 약 90키로)에 대한 부담으로 운동도 겸할 겸,
보온병에 물을 담아 배낭에 담고
라면에 말아먹을 도시락도 챙겨 묵직하게 배낭을 꾸려 매고 길을 나선다.
그러나...
비가 온다고 했는데도
이번 구간이 암릉구간임을 감안할 때 장갑에 대한 준비가 소홀했고,
혹시 있을지 모를 위기를 대비해 핫팩 등을 챙겼어야 했는데...ㅠㅠ
기온이 뚝 떨어질 것에 대한 대비도 부족해서 옷도 방한복이 아닌 얇은 옷을 입은 채로...ㅠㅠ
오늘은 여래향님이 못 오시고
버팔로다형님과 아카데미님이 못 오시고...
지난 구간에 이어 갈팡질팡님과 무원님 그리고 가을양님이 함께한다.^^
여전히 20명...ㅠㅠ
사당을 출발한 버스가 휴게소를 거쳐 들머리인 하늘재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2:30분 경...
거리가 짧으니 느즈막하게 출발하리라 예상했는데
실내등이 켜지고 모두들 부산하게 준비를 서두른다.
잠도 덜 깬 상태로 우왕좌왕 배낭을 꾸리다보니 맨 꼴찌...ㅠㅠ
갈팡질팡님과 무원님을 따라 급히 내려서니 하늘재의 새벽공기가 서늘하다.
그래도 우려했던 비는 오지 않는다.
다행이다. ^^
02:40분 하늘재 출발
하늘재...
해발고도 525m...
문경쪽에서 오르는 길은 고갯마루 가까이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 포장을 해 놓았으나,
미륵리 쪽은 비포장도로이다.
지금은 어두워서 그리고 출발준비가 늦어 확인할 수 없지만
2001년에 문경시에서 세운 계립령 유허비가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청아한 기운을 가득 머금고 솔바람 들꽃향기 그윽하게 피어내며
구름 한 점 머무는 고즈넉한 백두대간의 고갯마루,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영남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 장구한 세월동안
역사의 온갖 풍상과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이 고개가 계립령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와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이 고개는
속칭 하늘재, 지름재, 겨릅재, 대원령이라 부르기도 하며,
신라가 북진을 위해 아달라왕3년(156) 4월에
죽령과 조령 사이의 가장 낮은 곳에 길을 개척한 계립령은
신라의 대로로서 죽령보다 2년 먼저 길이 열렸다.
계립령을 넘어서면 곧바로 충주에 이르고,
그 곳 부터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한강하류까지 일사천리로 나갈 수 있는 길로서,
삼국시대에 신라는 물론 고구려, 백제가 함께 중요시한 지역으로 북진과 남진의 통로였으며,
신라는 문경지방을 교두보로 한강유역 진출이 가능하였고,
이곳 계립령을 경계로 백제와 고구려의 남진을 제지시켰다.
계립령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 온달장군과 연개소문의 실지회복을 위한 노력이 시도되었고,
왕건과 몽고의 차라대가 남하할 때,
또한 홍건적의 난으로 공민왕의 어가가 남쪽으로 몽진할 때도
이 고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등 숱한 사연을 담고 있는 곳이다.
고려시대 불교의 성지인 충북과 문경지방에 이르는 계립령로 주변에는
많은 사찰이 있었으나, 전란으로 소실되었고, 그 유적과 사지만 전한다.
조선조 태종14(1414) 조령로(지금의 문경새재)가 개척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령로가 험준한 지세로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시되자
계립령로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점차 떨어지게 되어 그 역할을 조령로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묵묵히 애환을 간직해 온 계립령로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보고
고개를 길손들에게 역사의 향취를 전하고 그 뜻을 기리고자 이곳에 유허비를 세운다.
이곳 하늘재에 대한 유래가 잘 정리되어 있다.
GPS가 켜지지 않아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선두는 벌써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발걸음을 재촉해 선두를 쫓아 오르막을 올라채는데 길을 잘못들었나 싶은데
어둠속에 커다란 비석이 나온다.
백두대간 하늘재...
대간 등로에서 약 30여미터 정도 비켜나 있다보니
우리 일행들은 그냥 지나쳤나보다.
서둘러 다시 일행들의 발자취를 따라 발걸음을 서둘러 나아가니
저만치 앞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채고 있는 후미를 만난다.
그렇게 얼마를 올라채다가 이정표를 만나니 모래산이란다.
02:53분 모래산 이정표
어두워서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이곳이 모래로된 사막과 같다고 거보대장님이 귀뜀해 주신다.
그런저런 얘길 주고 받으며 진행하다보니 전방에 커다란 바위로 된 굴다리가 나온다.
그 석문을 지나고 암릉구간을 지나 오르막을 올라채니 드디어 탄항산에 도착한다.
03:27분 탄항산 정상 도착
하늘재에서 탄항산까지 1.8키로...대략 50여분 소요...
탄항산...
해발고도 856m...
그러나 일부 지도엔 탄항산 대신 월항삼봉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곳에서 문경읍 평천리쪽으로 내려가면 '달목이 마을'이라는 곳이 있다고 한다.
한자로는 '달 월'에 '목 항'자를 쓰고, 우리말은 '달목이', 사투리는 '달믹이'라고 한다.
달목이의 '달'은 어원이 '하늘에 뜬 달'이 아니라,
'산'을 뜻하는 말이라 하므로, 한자로 '달 월'자를 쓴 것은 잘못된 것이란다.
좋은 마을 이름을 전부 이상한 한자이름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물론 제국주의 일본이지만,
해방 후에도 우리 땅 이름을 원래대로 되돌려놓지 못한 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봐야 할 듯...
그렇게 월항삼봉, 즉 탄항산에서 인증샷을 찍고 또 다시 출발...
20여분 내려서니 평천재 사거리다.
03:49분 평천재 사거리
하늘재에서 여기까지 2.8키로...
대략 1시간10여분 소요...
이정표는 진행방향으로 봤을 때 우측은 우리가 진행하면 만나게 될 동암문을,
좌측은 평천리 마을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계속 직진해야하고...
평천재를 지나면서 서리인 듯 진눈깨비인 듯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렇게 염려할만한 상황은 아니고...
오히려 잘하면 멋진 상고대를 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같게 한다.
그렇게 부푼 꿈을 안고 계속 진행하니 어느덧 주흘산 갈림길에 도착...
04:11분 주흘산 갈림길
하늘재 3.6 /부봉 삼거리 1.0하늘재에서 여기까지 약 3.4키로...
대략 1시간30여분 소요...
여기서 계속 전진하면 주흘산이 나온다고...
주흘산...
이곳 조령일대의 여러 산 중의 주산 또는 진산으로 통한단다.
그러나 대간길은 주흘산을 거치지 않고,
여기서 우틀하여 부봉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처음엔 서리인줄 알았던 것이 점점 진눈깨비로 발전하고 있다.
04:41분 부봉 갈림길
하늘재 4.6/마패봉 4.0
부봉에 가면 멋지게 펼쳐진 백두대간 마루금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둡기도 하거니와 날씨가 흐려서도 멋진 조망을 기대하기는
애초에 틀렸기에 그냥 부봉을 패스...
이어진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동암문 사거리...
04:51분 동암문 사거리
이정표엔 제3관문 3.9/2시간/부봉1.3키로/30분 이라고 씌어있다.
하늘재에서 여기까지 약 4.8키로...2시간10분이 소요되었다.
눈은 그치지 않고 점점 더 내리는 분위기다...
그러나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 것은 천만다행...
763봉을 지나고...,
764봉을 지나고...,
756봉을 지나고...
어둠속에 그리고 눈이 내리는 잔뜩 흐린 날씨에 보이는 것 하나 없으니
그냥 걷기만 할 뿐...
그렇게 50여분을 진행하니 북암문 사거리...
05:39분 북암문 사거리
지릅재 1.7/부봉 3.0이정표가 나를 반기고...
06:08분 마패봉(마역봉)
하늘재에서 여기까지 약 8.1키로...
마패봉인지 마역봉인지 헷갈리게 하는 봉우리에 도착했다.
06:43분 조령3관문
하늘재에서 조령3관문까지 약 9.0키로...
하늘재에서 4시간 경과... 시속 2.25키로 정도 진행...
조령, 속칭 새재는 조령산 북쪽 백두대간 상에 위치한다.
예부터 영남쪽에서 이 고개를 넘어
충주를 경유해 한양으로 통하는 가장 크고 빠른 고갯길이었다.
새재는 조선시대 과거길에 올랐던 영남의 선비들이 급제의 꿈을 안고 넘었던 고개다.
그로 인해 새재 이남의 고을이름을 영남 자제들의 경사스러운 과거급제 소식을
가장 먼저 듣게 되는 고을이라 하여 문경(聞慶)이라 했다는 속설까지도 생겨나게 됐다.
그러나 여지승람과 대동지지 등의 문경조 연혁에 의하면,
이미 고려 태조 때부터 이 고을 이름을 문희군(聞喜郡)이라 불러왔고,
고려 현종 이후 조선조 이전 시기에
‘聞喜’의 기쁠 희(喜) 자와 유사 의미를 지닌 ‘慶’자로 고쳐 문경이라 불러온 것을 보면,
위의 지명유래는 아마도 부회되어 생겨난 속설일 것이라 추측된다.
조선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새재의 본명으로 정착되다시피 한 ‘鳥嶺’이란 한자말 표기는
영월의 사자산 법흥사(옛 흥녕사) 경내에 있는 징효대사보인탑비(澄曉大師寶印塔碑)에 처음 보인다.
새재의 한자말 표기에 있어서는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앞선 시기 문헌에 초점(草岾),
여지승람 · 여지도서 등 조선 중·후기의 지리지 기록에 조령(鳥嶺),
신경준(申景濬·1712-1781)의 여암전서(旅菴全書) 산수고(山水考) 문경조에 신령(新嶺) 등의 표기를
살필 수 있다.
새재의 땅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들 한자말 표기와 연관되어 설명되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속설은 곧 조령과 연관시켜 ‘나는 새도 쉬어가는 험준한 고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험하고 높은 고개’라 풀이하는 것이다.
또는 초점과 연관시켜 ‘새(억새 따위)가 우거진 고개’라 풀이하고도 있다.
여기서의 ‘새’는 곧 산과 들에서 자라는 띠나 억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새재에 대하여 이미 고려시대부터 ‘草岾’이라 불러왔고,
또 새재 골짜기 들머리의 마을 이름을 조선시대에도 초곡방(草谷坊)으로 칭했고,
현재까지도 조령 제1관문 위쪽을 상초리(上草里), 아래쪽을 하초리(下草里)라 불러온 것을 보면,
이곳 조령 일원에 새(억새 따위)가 많아 뜻 옮김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신령과 연관시켜 일찍이 신라 때부터 영로가 개통된 죽령 · 계립령이 옛 고개,
묵은 고개임에 대하여 이 고개는 새로 난 고개라는 의미로 풀이한다.
신경준은 일찍이 이 표기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조령… 신라 아달라왕이 이 영로를 새로 열었기 때문에 신령이라 했다.
방언에 조(鳥)의 해석(훈)을 새[新]라 하므로 鳥嶺이라 했다.
또 방언에 초(草)의 해석이 新[새]의 해석과 동일하므로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였다.’
삼국사기 아달라이사금조에 의하면,
계립령은 아달라왕 3년에, 죽령은 5년에 개통됐다는 기사가 보이나,
같은 왕대이든, 다른 왕대이든 신라시대에 조령이 개설됐다는 기사는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신경준의 새재설(신령설)을 다 동의할 수는 없으나,
계립령 · 죽령의 옛 길에 대하여 새로 개설한 영로라는 의미로
새재[新嶺]라 했다는 견해에는 동의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를 후대에 ‘鳥嶺’으로 표기하게 된 것은
주로 시인 · 묵객과 같은 표기자의 주관에 따라 좀 더 우아하게 소리옮김한 표기로 볼 수 있다.
위의 설들은 대체로 다 일리 있는 말들이라 어느 설이 정설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조령3관문..., 조령관..., 문경새재 정상에 도착하니
모두들 식당 한 켠에 있는 비닐하우스에서 몸을 녹이고 있다.
대간꾼들에게 조령3관문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항상 이곳 주막에서 새재라면과 새재산채전에 막걸리를 마셔야 비로소 대간종주를 인정받는다고...
아닌게 아니라 여기까지 진행하면서 계속 내리는 눈으로 인해 옷이 젖어 춥기도 하고,
얼른 비닐하우스로 들어가 이제 막 불피우기 시작한 난로 곁에 옹기종기 모여
장갑과 옷을 말리며 추위에 언 몸을 녹이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은 여기서 미리 예약해 둔 새재라면으로 하기로 한다.
라면이라고 모두 같은 라면일 것으로 생각하면 착각이다.
이 곳 라면은 '새재라면'이라고 명명되어 있는데,
콩나물과 버섯이 들어가 아주 시원하다고...
값은 조금 비싼 4,000원이란다.
새재 산채전에 새재 막걸리를 마시지 않으면 백두대간 종주가 무효라고... ㅎㅎㅎ
밖을 보니 눈이 계속 내리고 있어 등로가 점점 험해지고,
앞으로 넘어야 할 구간인 신선암봉과 조령산구간은
지금까지 지나온 구간인 탄항산과 마패봉보다 난이도가 훨씬 어렵다보니
특부형님과 바위산형님 매뉴얼형님 그리고 거보대장님마저
더 이상의 진행이 무모하고 위험하다며 여기서 접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신다.
이에 우리 대간길의 노조위원장인 허구현님이 대간을 중단하자고
천문대장님과 단판을 짓겠다고 한다. ㅋㅋㅋ
나 역시 한편으로는 절대적으로 동감하면서,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한 구간 절반으로 짤라먹게 되는 것에 대해 진한 아쉬움이 생긴다.
그런데...
천문대장님이 너무나 강하게 그대로 진행할 것을 주장하신다.
(나는 속으로 너무나 당연하게 중단할 것으로 예상했던 터라 다소 의외였다.)
지금 내리는 눈은 8시가 넘으면 날씨가 개면서, 눈은 다 녹을 것이고,
따라서 암릉구간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며, 진행하자는 의견인 것...
이에 자치회장님이신 에코님도 거드니...
아~! 우리 허구현님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따른단다. ㅠㅠ
어쩔 수 없이 발 뒤꿈치 통증으로 힘드러 하신 바위산형님과 특부형님,
그리고 가을양님이 바이올린누님과 무원님과 함께 여기서 멈추기로 하고,
나머지 열 다섯명은 다시 출발을 준비한다.
08:10분 조령3관문 출발
서서히 고도를 높이면서
그러나 8시가 넘으면 잦아들 것이라고 판단한 눈은 아직도 멈출 줄 모르고...
그렇게 일사분란하게 진행하여 깃대봉 갈림길에 도착...
08:24분 깃대봉 갈림길
깃대봉 0.42/조령3관문 0.8
15분여 경과하여 800여미터를 진행...
아직까지 진행속도는 크게 문제가 없단다.
눈은 계속 쌓이고
점점 쌓이기 시작한 눈은 벌써 발목을 덮고 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계속해서 쌓이다 보니 어쩐지 불길하다는 생각이 든다.
갈팡질팡님과 허구현님을 제외한 나머지는 아이젠마저 준비하지 못했다.
09:05분 760봉서서히 고도를 높이면서 진행하는 시간이 경과될수록 눈은 점점 더 쌓여간다.
얼마나 진행했을까.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 밧줄과 함께 가파른 암릉구간이 앞을 가린다.
갈수록 진행하는 속도가 더디어진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깨닫지 못한 듯 전체적인 진행속도가 조금 더디어질 뿐
진행하는 내내 여유가 느껴진다.
09:29분 갈림길
제3관문/제2관문/조령산3.2
그러나 점점 늘어나는 암릉구간...
이어지는 밧줄과 또 밧줄...
사태의 심각성이 심각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겉으로는 웃지만,
그러나 점점 긴장되는 것을 느낀다.
진행대열을 여산우와 남산우가 중간중간 끼어 진행...
앞에서 손으로 잡아주고, 뒤에서 아이젠 없이 미끄러지는 여산우들의 신발을 받쳐주면서
암릉구간을 헤쳐나간다.
맞은 편에서 우리 일행이 아닌 산객 두 사람이 눈에 띈다.
우리랑 같이 올라오신 분은 아닌데...
물어보니 이화령에서 넘어오는 길이란다. ㅠㅠ
우리랑 같은 시간인 8시에 넘어오는 길이란다.
한눈에 봐도 산행을 많이 해보신 분들인 듯...
그러나 아이젠도 없이 여기까지 왔단다.
이쪽 사정이 어떠냐고 묻길래...
그냥 돌아가시라고 당부했다.
우리도 지금 여기까지 진행하면서 위험한 고비를 많이 넘겨 후회하는 중이라며,
안전을 위해 그냥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사실이다.
돌아가야 겠다고...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지금까지 올라오는 길보다 앞으로 가는 길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는 매뉴얼형님의 말씀에 다른 대책이 없다보니 그냥 진행한다.
가파르게 이어지는 미끄러운 암릉구간...
아이젠도 없이 진행하다보니
더욱 더 조심하게 진행하다보니 진행속도가 더디고...
그칠 줄 알았던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따라서 젖은 밧줄을 잡는 장갑은 이미 젖어 손이 시려오고...
미끄러운 밧줄을 잡고 오르면서 점점 힘이 빠져온다.
이젠 끝나나 싶었는데 또 이어진 가파른 암릉과 밧줄이 나타나니
이젠 다리까지 후들거려온다.
이건 아니다. 이대론 안 된다 싶어 돌아가고 싶지만...
반대로 이젠 다 왔겠지 다와 가겠지...
아무렴 돌아가는 것보다는 나을거야 하는 생각에
조금만 더 참아보자 하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한다.
그렇게 계속되는 오르막을 오르는데
앞서가던 온당님이 미끄러지면서 옆으로 스쳐내려간다.
본능적으로 온당님은 밧줄을 놓치지 않고 꼭 잡고,
나도 순간적으로 몸을 기울여 간신히 온당님의 미끄러짐을 저지한다.
식은 땀을 흘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렵게 어렵게 암릉을 올라서니 신선암봉에 도착한다.
10:50분 신선암봉
하늘재에서 약 13.1키로...조령3관문에서 여기까지 약 4.1키로...조령3관문에서 여기까지 2시간하고도 40분이 걸렸다.
암릉구간이라 속도가 더디리라 예상했지만 훨씬 더 심각하다.
신선들만 사는 곳이라 신선암봉이라고 했을까...
그래서 인간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려고 암릉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이 신선놀음에 가깝게 절경이다보니 신선암봉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런 조망도 절경도 전혀 볼 수 없어서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냥 춥고 배고프고, 위험하니 그냥 인증샷 만을 남긴 채 그냥 내려설 수 밖에...
여기서부터 조령산까지는 지금까지 이어진 암릉구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단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긴장이 풀리고,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을까.
바로 이어진 사고...
신선암봉에서 내려서는 완만한 바위능선에서 홍원님이 내려서고,
하얀소형님이 내려서고, 푸른향님이 내려선 후,
내 차례가 되어 내려서는데 바위가 눈으로 덮여 미끄럽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구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보니 자만심에 서두르다
무게중심을 잃고 우측 절벽 아래로 추락...
순간적으로 밧줄을 쥔 손에 힘을 주어 매달리는데,
둔탁하면서 묵직한 충격이 꽉 다문 어금니쪽으로 가해진다.
아차~! 사고다... ㅠㅠ
그렇게 서두를 어떤 이유도 없었다.
누가 그렇게 재촉한 적도 없었다.
후회한들 어쩌랴...
정신을 차리고 발 디딜 곳을 찾아 안전하게 지지한 후,
뺨을 만져보니 얼얼하다. 다행히 이빨은 안전하다.
그런데 침을 뱉으니 한 웅큼의 피가 눈 위로 쏟아진다.
창피하기도 하고, 화도 나면서 다시 밧줄을 잡고 올라서서 계속 진행...
12:09분 마당바위 갈림길
12:57분 조령산
하늘재에서 약 14.5키로...조령3관문에서 여기까지 약 5.5키로... 4시간 50여분 소요...
신선암봉에서 여기까지 약 1.7키로... 약 2시간 정도 진행했다...
조령산...
해발고도 1026m...
북쪽으로 영남대로 상의 큰 고개인 조령과
남쪽으로 3번 국도 상의 큰 고개인 이화령을 거느리고 있는 문경의 큰 산이다.
조령산은 동국여지승람 · 대동지지 등의 연풍조 기록과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공정산(公正山)으로 불리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산이 조령산으로 불리게 된 것은
아마도 조선총독부에서 이 산 북쪽에 위치한 조령관문의 지명도와,
국방상의 전략적 차원에서 이 산에 축성한 조령산성 등이 자리하고 있는 산이라 하여
근세 한국 오만분지일 지형도에 이 산의 산명을 조령산(鳥嶺山)으로 표기하기 시작한
일제시대 이후의 일이라 추측된다.
오늘의 대간길의 마지막 봉우리 조령산에서 떼사진을 찍고
예상보다 늦어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내리막길을 서둘러 내려간다.
원래의 예상대로라면 4시간 정도에 이화령에 도착할 것으로 봤다.
그런데 계속되는 눈으로 인해 밧줄도 코스도 모두 미끄럽고 위험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진행이 더디게 진행되어 1시간이 더 지난 지금 간신히 조령산에 도착한 것...
촛대봉 갈림길을 지나고 이어진 가파른 내리막길은 또 다른 악재로 작용...
지금까지 대간길을 진행하면서
넘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거보대장님마저 4번 정도 넘어질 정도로
내리막길은 가파르고 미끄럽다.
나는 숫제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려 하지만,
바지가 방수복이 아니고, 방한복도 아니다보니 너무 추워 맘대로 미끄럼도 탈 수 없다.
사면초가의 심정이랄까...
내려가긴 해야 하는데...
앞선 사람의 자취를 따라 내려가면 여지없이 미끄러지고...
어쩔 수 없이 앞사람이 밟지 않은 낙엽을 밟아가며 내려가다보니 또 미끄러지고...
그렇게 한참을 내려서니 조령샘터가 눈에 들어온다.
13:22분 조령샘터
일단 여기까지 오니 이젠 다 왔구나 하는 안도감에
마음의 여유를 챙길 겸 조령샘물을 한 바가지 떠서 목을 추겨본다.
이정표를 보니 이화령까지 20분이라는 글이 무척 반갑게 보인다.
그러나...
그로부터 이화령에 도착한 것은 40여분이 지난 상태...
14:20분 이화령
이화령...
현재의 ‘梨花嶺’ 표기는 조선총독부에서 1914~1918년에 걸쳐 조사 제작한
근세한국오만분지일지형도에서 잘못 표기한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본래의 의미가 변질된 표기다.
1929년에 김유동이 저술 간행한
팔도명승고적 문경군조에도 伊火峴으로 표기하고 있음을 살 필수 있다.
이화령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19 병고(兵考)에 보이는,
조선 숙종 31년(1705)조 기사에 의하면, 이오령(伊吾嶺)으로도 표기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방언(方言) 상에서 이화령→아와령→이오령으로 전음(轉音)되어 일컬어지던 것을
소리나는 그대로 표기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화령의 속칭 이우릿재도 이화령 부근의 동리 이름을 따서
이화리의 고개란 뜻으로 이화릿재라 일컫던 말이 이와릿재→이우릿재로 전음된 것이거나,
또는 이화(伊火)의 음과 훈(訓)이 혼용된 이불(벌)재, 이부릿재→이우릿재로 전음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음과 훈이 혼용되어 일컬어지는 땅이름 용례는 우리 땅이름에 흔히 보이는 것으로,
예컨대 하늘재 동남쪽 문경읍 갈평리의 갈평(葛坪)도 속칭 갈벌이라 일컫기도 하는 것과 같은 예이다.
또는 이화령은 아득하다, 희미하다의 옛말 ‘입다’의 고형태인
‘이블다(이울다)’에서 ‘이블’을 취하여 아득한 고개라는 뜻으로
이블재[伊火峴]라 일컫던 것이 전음되어
이울재→이우릿재라 일컫던 고개 이름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이화령은 1925년에 차가 다닐 수 있는 신작로로 닦이면서 북쪽에 위치한 조령을 대신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주요 교통로의 기능을 담당했고,
조령은 옛길의 하나로서 가벼운 등산과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로 변했다.
드디어 오늘의 산행의 날머리인 이화령에 도착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산우들이 무사히 이화령에 도착했다.
고생한 만큼, 그리고 걱정했던 이상으로 그 완성한 느낌은 감격적이다.
예상치 못한 기상악화로 인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러나 우린 현명하게 산우들 간의 유기적인 협력으로 모두들 무사히 한 구간을 완료했다.
▼ 들머리
▼ 하늘재 조형물, 등로에서 30여m 좌측에 있다.
▼ 무명봉이었는데 이름을 부여 받았는가 보다.
▼ 석문
▼ 탄항산 이정표지목
▼ 후미를 챙겨 맨뒤로 오르니 모두 기다리다 출발해버렸다.
▼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느낌이 안좋다.
▼ 선두는 부봉삼거리를 지난다는 무전 연락이 오고, 새재에서 기다린단다.
▼ 동암문, 4월 중순이 지난때에 함박눈이 내린다.
▼ 북암문, 점점 쌓이는 눈에 걱정도 쌓여만 간다.
▼ 마역봉 전 돌탑이 있는 봉우리
▼ 마역봉 정상의 이정표지목
▼ 눈 속의 진달래
▼ 조령3관문(새재) 마역봉에서 여기까지 된비알을 미끄러워 벌벌벌...
▼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매점 장작난로가에서 새재전에 막걸리를 먹고있다.
▼ 진행불가의 뜻을 산우들에게 비쳤으나 관철하지 못하고 진행한다.
▼ 발목까지 쌓인 눈속을 대부분 아이젠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 조령3관문에서 이화령까지는 암릉이 많고, 밧줄을 잡고 오르내리는 곳이 40여곳이 넘는다.
▼ 막 피어나다가 눈폭탄을 맞은 진달래가 가엽다.
▼ 깃대봉 갈림길. 서서히 후회가 밀려든다.
▼ 습기가 많은 눈이라 앞사람이 밟고간 등로는 썰매장과 같다.
▼ 새재에서 하산한 5명을 제외한 15명은 조심조심...
▼ 드디어 유격훈련장 도착.
▼ 좌측으로는 절벽에 가까운 암릉을 지나고
▼ 맑은 날씨면 멋진 암릉과 소나무, 그리고 조망을 즐기며 갈텐데...
▼ 모양은 안나지만, 바람도 불어 우비를 입으니 괜찮다. 손은 시리지만...
▼ 긴장의 연속... 그저 모두 안전하게 날머리까지 도착하기를 기원하며 후미에서 긴장, 또 긴장...
▼ 기암괴석과 소나무의 멋진 풍광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 밧줄잡고 암릉을 오르고, 내리고...
▼ 모두가 떠나가 버린 신선암봉에 후미와 도착.
▼ 힘들게 오른 조령산에서 떼사진을 남긴다. 마스크한 송암자는 밧줄을 잡고 구르며 얼굴을 부딪쳐 부상.
▼ 조령산에서 이화령은 흙길이지만 눈길이 되어 연신 엉덩방아를 찧으며 하산. 몇일간 엉덩이가 아파서 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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