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차(11.02~12.05)

제29차(구룡령-조침령)

실미도 2012. 3. 23. 14:11
      ▲▲▲ 제29차(구룡령-조침령) ▲▲▲ o 산행일시 : 2012년 03월 16일(금) - 17일(토) (무박2일) o 산행인원 : 그린산악회 백두대간4기 대원 27명 o 산행코스 : 구룡령-갈전곡봉-왕승골삼거리-연가리골갈림길-조침령 o 산행거리 : 21.25km(종주누계거리 659.73km / 백두대간 거리 734.58km 89.81%) o 산행시간 : 04시19분 - 17시52분 : 13시간 33분(송암자님 GPS기록) o 산행날씨 : 눈/흐림 산행 진행도
      GPS궤적['송암자'님 작성]
      GPS상세정보['송암자'님 작성]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처음으로 대간산행에 참석하지 못해 마바르형님의 산행기로 대신한다. ☞ [산행기는 북진을 함께하는 '대간길' 산방의 "마바르" 형님 후기를 허락을 받아 옮긴다] ❉❉❉ 조침령까지 러셀(Russell) 14시간 ❉❉❉ - 白頭大幹 북진 29차 (구룡령~조침령 21km) - 知之者不如好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好之者不如樂之者(호지자불여락지자)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등산에 있어서도 이 말이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산을 안다는 것은 한라산 1,950m 지리산 1,915m 설악산 1,708m 덕유산 1,614m 등 산 이름만 머리 속으로 기억만 하고 그냥 사는 사람들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하, 산이 좋구나」하고 반응을 보이고 실제로 등산을 하는 사람이다. 안다는 것보다 한 수 높게 가슴까지 들어갔다. 그러면 즐거워한다는 것은 어떤 수준일까? 머리와가슴이 감동하고 영혼까지 울리는 아주 고차원적인 단계, 산에 있는 것 만으로도 무아의 지경에 빠져 내면의 영혼까지 차분해져 자연과 동화되는 수준이다. 산을 좋아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산을 오르는 것 보다는 배낭 가득 채워온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며 한바탕 떠들고 나서 등산 잘했다고 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다녀 온지도 모르는 사람, 운동 보다는 과시욕이나 이성 교제 등 잿밥에 관심 있어 등산하는 사람, 산행을 마치 경주하듯 오산종주 태극종주 백두대간 종주를 시간과 횟수 등 기록단축과 극기산행에 빠져있는 사람들도 있고, 그 밖에 암벽등반, 빙벽등반 등을 하기 위해서 산을 찾지만 대부분 체력단련이 목적이다. 그래서 이제는 육체적 단련을 뛰어넘어 즐기는 산행도 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머리와 가슴, 영혼까지 빠져드는 즐기는 산행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나도 그 방법은 모르지만 천천히 가면서, 산을 꼼꼼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옛말에「시이불견(視而不見) 보기는 보는데 보이지 않는다」「청이불문(聽而不聞) 듣기는 듣는데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산에 오르면서 수많은 것을 보고 듣는데 왜 안 보이고, 안 들리고, 머리와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없을까. 같은 산 같은 코스로 수십 번 수백 번을 오르내려도 그 산에 어떤 나무, 어떤 꽃, 어떤 벌레가 있고, 어떤 새가 살고 있는 지 모른다. 이것은 내 마음이 육체적인 등산 외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산행할 때에는 바위나 동/식물 등 산 속에 같이 어울려 있는 것과 바람과 구름, 달과 별 등 산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게 마음을 줘 보자. 지금 보다 훨씬 더 많이 보이고, 느껴질 것이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하지 말고, 마음에 드는 한가지만 선택해서 마음을 집중시켜 보자. 야생화 한 두 가지 꽃말과 사연까지 세세하게 알고 나면, 그것을 보기 위해서 산을 오르게 되고, 그 야생화를 보는 것 만으로도 흥분한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산을 한 차원 더 높게 오랫동안 즐기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산, 즐겨야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이란 창구를 통해서만 세상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이 시끄러우면 세상도 시끄러울 것이고 마음이 평화로우면 세상도 평화롭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내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혜민 스님 글 중에서) 오늘 산행 공지는 연막전술(煙幕戰術)을 썼다. 삽당령에서 대관령까지 가는 것으로 공지했지만 실제는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제한된 구간인 진부령에서 구룡령 구간을 가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하늘까지 도와주지 않아 금요일 오후부터 전국적으로 다시 비가 내리고 강원 산간지방은 눈이 내린다고 한다. 지난 12월부터 올겨울 내내 대간 가는 주말마다 눈이 내려 한 구간도 제대로 끝낸 구간이 없다. 연막전술도 자연이 도와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이 구간은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도저히 접근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다음 구간인 구룡령~ 갈전곡봉~ 연가리골 샘터~쇠나드리 고개~ 조침령까지 20.6km 진동리까지 접속구간 1.4km를 포함하여 22km를 간다. 눈이 쌓인 이런 계절에 이 구간을 가는 것 차체가 무모하지만 모였으니 간다. ○ 심심산골 구룡령(1,013m) 옛길도 눈 속에 파묻혀 있다. 2012. 3. 17 새벽 4: 19 구룡령 정상 어젯밤 서울을 출발할 때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만 여기 구룡령 정상은 진눈깨비로 변해있다. 27명만 참석해서 그런지 다른 날과 달리 단출한 느낌이 든다. 올겨울 내내 눈 길 산행에 지쳤는지 아니면 날씨가 나빠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간 4기가 시작한 이래 오늘이 29번째 산행이지만 참석 인원이 처음으로 30명이 되지 않는다. 구룡령 고갯마루 길 가장자리에 쌓인 눈을 밟으니 질퍽거린다. 처음부터 아이젠을 차고 눈 속에 파묻힌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른다. 이 계단을 올라서면 겨울철은 탈출로가 막혀 끝까지 가거나 되돌아 오는 두 가지 방법밖에 없다. 이번 구간은 강원도 오지 중에 오지 한복판을 가로질러 올라가는 구간이다. 출발지점인 구룡령 해발고도가 1,013m이고 이어지는 갈전곡봉이 1,204m로 가장 높고 그 이후는 해발고도가 조금씩 낮아지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봉우리들이 키 순서대로 올망졸망 조침령(750m)까지 이어져 있다. 조침령까지 21km, 그 안에 수많은 봉우리들이 있지만 그 흔한 산 이름 하나 얻지 못했어도 계곡이 깊고, 길어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청정지역이다. 강원도 홍천 내면에서 양양으로 넘어가는 56번 국도 고갯마루인 구룡령은 영동고속도로 속사IC에서 대산 쪽으로 휘어 한참을 들어가다가 이승복 기념관을 지나 운두령을 넘어야 올 수 있는데 서울에서 약 4시간 소요된다. 구룡령 들머리, 눈 속에 파묻힌 나무계단까지 러셀하면서 겨우 올라섰더니 사방이 눈이다. 눈이 녹았다는 남측 사면도 아직 눈이 50센티 쌓여있고, 북측 사면은 1~2미터 정도 쌓여있다. 대간 마루금 이기도 한 구룡령 옛길을 더듬어 1시간 30분만에 구룡령 2.2km(1시간), 갈전곡봉 2km(1시간) 이라고 새겨진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정표가 1.5m 눈 속에 파묻혀 방향표시 팻말만 눈 밖에 나와있어 기둥에 표시된 현 위치를 볼 수 없어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다. 그나마 이런 이정표도 갈전곡봉까지만 있고 이후 조침령까지 세워진 모든 이정표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조침령」 과 「구룡령」을 가리키는 방향표시만 새겨져 있고, 남은 거리 등 다른 정보는 전혀 없다. 특이한 것은 그 밑에 N 37 55 25.5, E 128 28 28.9 위도와 경도가 이정표 마다 표시되어 있다. 분명 어떤 것보다 과학적인 위치 정보를 알려주려고 했지만 그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없으니 무용지물이다. 보통 산악인들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구간 거리 정보 정도는 새겨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도 거리 표시 없이 「1시간 30분」등 소요시간만 표시한 다른 곳 이정표 보다는 한 단계 발전한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 러셀 할 거리는 길고, 선수들은 다 빠지고 오늘따라 선수들이 다 빠졌다. 평소에는 선두에서 질풍같이 달리면서 힘들고 궂은 일 솔선수범하고, 눈 밭에서는 러셀까지 전담했던 산행실력과 체력이 출중한 산꾼인 거보, 하얀소, 들풀, 백갈매기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빠졌다. 남은 사람들도 산행 실력들이 대단하지만 이들 때문에 평상시에는 러셀 할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도 올 겨울 마지막 러셀이라 남아 있는 대원들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려고 서로 이심전심으로 다 빠진 것인지 모른다. 지난 구간 러셀하는 시늉만한 여성 대원들에게 기회를 줬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아 천문대장을 필두로 남성대원들이 교대로 러셀하면서 전진한다. 눈길을 내는 일, 러셀은 인원이 많은 것이 좋고 체력안배를 잘해야 한다. 눈길 폭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면 충분하다. 평상시보다 보폭도 좁게 동작도 작게 해서 체력소모를 줄이고, 한 사람이 장시간 하지 말고 교대로 돌아가며 선두에 서는 것이 체력안배의 요령이다. 아직 어둠이지만 선두가 지친 것 같아 갈전곡봉 오르는 눈길에서 선두에 나선다. 오늘 저녁 8시 서울에서 약속도 있고 해서 처음에는 빠른 걸음으로 호기로이 보폭을 넓히며 전진했지만 이내 내 딛는 앞발이 허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허벅지까지 눈 속으로 푹 빠진다. 녹기 시작한 습기를 많이 머금은 눈이 허벅지를 감싸고 있어 다리를 빼기가 쉽지 않다. 무릎을 구부려 눈 속에서 무릎을 휘휘 돌리며 공간을 넓힌 후에야 겨우 빠진 다리를 뺄 수 있었다. 눈이 얼마나 깊게 쌓였는지 사타구니까지 눈 속에 빠지고도 발 끝이 땅에 닿지 않아 공중에 떠있는 기분이다. 올라가는 남쪽 경사면은 눈이 녹아 무릎까지 쌓여있지만 습기를 머금은 눈이라 등산화로 앞을 찍으면서 오르면 눈이 다져져 오르기가 한결 수월하지만 북측 경사면은 눈이 그대로 쌓여있어 눈이 허리까지 빠져 내리막인데도 오르막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고 눈길을 내는 속도가 느리다. 경사도가 심한 곳은 차라리 엉덩이를 대고 미끄러져 내려간다. 길이 없다. 가끔 가다가 보이는 리본을 이정표 삼아 눈 밭에 트인 나무 사이로 무작정 올라간다. 곧 숨이 넘어갈 지경이지만 어둠과 비안개 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갈전곡봉을 향하여 결사적으로 눈길을 내면서 오르고 또 오른다. 갈전곡봉이란 팻말을 보고 나서는 그냥 눈 위에 풀썩 주저 앉는다.   ○ 갈전곡봉(葛田谷峯 1,204m) 2012. 3. 17 07:07 갈전곡봉 정상 구룡령에서 3.9km를 약 2시간 50분 걸려 도착했다. 시속 1.5km도 되지 않는다. 남아있는 거리 약 17km 이 속도로 간다면 최소한 11~12시간은 더 가야 한다. 해가 있는 동안에 조침령에 도착하기 어려워 헤드랜턴을 다시 켜야 할 지도 모른다. 배터리가 얼마 남아있지 않은 걱정도 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뒤돌아 갈 마음은 전혀 없다. 할 수 없이 오늘 저녁 약속을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푸근하다. 이제는 마음을 비우고 걷는다. 눈도 구경하며 나무 사이로 훤하게 난 곳으로 길을 잡아서 걷는다. 눈 위에는 고라니, 노루, 맷돼지 발자국들도 여기 저기 선명하다. 리본이 보이지 않고 어렴풋한 길도 보이지 않을 때에는 눈 위에 나 있는 이들 야생동물 발자국을 따라서 걷는다. 대간 마루금은 대간꾼들만 걷는 것이 아니라, 이들 야생동물들도 따라 걷는다. 이들은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 우리가 오기 전에 먼저 지나갔다. 해발 1,204m의 갈전곡봉은 이번 구간의 제일 높은 봉우리지만 산이라는 이름을 얻지 못했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麒麟面)과 양양군 서면(西面) 사이에 있는 산으로, 방대천(芳臺川), 계방천(桂芳川), 내린천 (內麟川) 등의 발원지이지만 정상 표지 팻말도 앙상한 나뭇가지에 덩그러니 매달려있을 뿐이다. 다시 길을 나선다. 아침 먹을 곳을 찾다가 아침 9시를 넘어서고서야 눈 쌓인 이름 모를 봉우리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아침을 먹는다. 산행이 길어질 것에 대비해서 행동식을 준비하라는 공지에 아침이래야 빵과 콜라 등 간편식이 대부분이다. ○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눈길, 언제 다 가려나 선두를 바꿔가면서 올 겨울 아무도 가지 않는 눈길을 끝없이 계속 간다. 몇 시간을 걷고 나서 반은 왔겠지 생각하고 지나 온 거리를 확인해보면 겨우 3~4km 왔다. 질릴 정도로 눈길이 줄어들지 않는다. 서산대사께서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길을 걸을 때에는 함부로 걷지 마라 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광야를 지나갈 때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를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나의 발자국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마침내 후세들에겐 이정표가 되리니 맞는 말씀이다. 이 눈이 녹으면 이내 없어질 눈길이지만 오늘만큼은 선두가 낸 길이 곧 유일한 길이 된다. 그 길이 바른 길인지 아닌지 판단하고 구분할 여유도 시간도 없지만 선두가 찍은 발자국을 따라 그 뒤로 26명이 줄줄이 따라간다. 그렇게 연기리골 샘터 부근에 다다르니 날이 훤해진다. 비구름이 지나간 동쪽 절벽 아래에는 황홀한 설경이 펼쳐지고 오른 쪽에는 거대한 산이 병풍처럼 막아 선다. 나는 오른 쪽으로 보이는 산이 점봉산으로 알았지만 대장은 오대산이라 한다. 수긍이 가지 않아 집에 와서 지도를 펴놓고 확인해보니 그 산은 강원도 양양 서면에 있는 조봉(1,182m)이고 그 북쪽으로는 정족산(869m)이 자리잡고 있었다. ○ 무모한 산행, 그러나 칠전팔기(七顚八起) 도전 끝에 기어이 성공하고야 말았다. 하늘아래 끝 동네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갈전곡봉에서 조침령까지 이어진 마루금 오른쪽 지역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오지의 상징인 4가리(아침가리, 연가리, 적가리, 명지가리)가 이곳에 전부 있다. 정감록에도 강원도 인제의 후미진 일곱 곳을 '3둔 4가리'라 하여 최고의 피난처로 꼽았는데, 지금껏 오지의 대명사로 불린다. 둔(屯)이라 함은 유심한 골짜기로 이어지는 깊은 곳에 사람 몇이 숨어살 만한 작은 은둔처를 가리키고 가리 (갈이:耕)는 화전을 일구어 한나절 밭갈이 할만한 곳으로 난세를 피해 잠시 땅 일구며 살아갈 만한 곳이란 뜻이다. 이정표가 있지만 조침령과 구룡령만 새겨져 있고 거리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내가 있는 위치를 알 수 없다. 갈 길이 얼마 남았는지 알 수 없다. 보이는 것은 눈 덮인 능선뿐이다. 모두들 러셀하느라 체력마져 바닥났다. 아침 9시쯤 빵 한 두 조각으로 아침 때우고, 오후 4시가 지난 이 시간까지 과일 몇 조각을 서로 나눠 먹으면서 눈길을 걸어왔다. 허기가 질 정도로 시장기가 몰려온다. 그래도 배고픈 대원에게 남은 초콜렛과 사탕 몇 알을 나눠주고 다시 힘을 내어 걷는다. 누군가 GPS로 확인해보니 조침령까지 약 3km 정도 남았다 한다. 마지막 힘을 내어 본다. 이 정도 거리면 봉우리 한 두 개만 넘으면 될 둘 알았지만 보이는 봉우리를 올라서면 또 다른 봉우리들이 솟아나곤 한다. 얼마나 많은 봉우리를 넘었을까? 선두에서 러셀하는 대원들의 발걸음이 확연하게 느려졌다. 나를 비롯하여 아침나절에 선두에서 러셀했던 대원들이 다시 선두로 나선다. 천문대장이 봉우리 서너 개 사이에 솟아있는 봉우리를 가리키며 저 봉우리가 마지막 봉우리라 한다. 다시 선두에 서서 남은 힘을 전부 쏟아 붙는다. 때로는 눈 속에 허벅지까지 빠지더라도 뒤따라오는 대원들을 생각하며 힘껏 다리를 뽑아 올린다. 오르막도 거침없이 올라간다. 뒤돌아 보니 26명의 대원들이 내가 낸 눈길을 따라 온다. 숨이 넘어갈 듯 하지만 멈출 수 없다. 그렇게 9부 능선까지 러셀하고 다른 대원에게 선두를 맡기고 나는 다시맨 뒤로 처진다. 피로감과 허기가 새벽에 러셀하느라 오버페이스 한 것까지 겹쳐서 한꺼번에 밀려온다. 눈 앞에 보이는 오르막 10여 미터만 올라서면 마지막 봉우리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움직일 수 없다. 그냥 주저앉고 싶지만, 맨 뒤에서 휘청거리며 따라간다. 드디어 조침령 나무계단에 올라선다. 칠전팔기(七顚八起), 올 겨울 8번 도전 끝에 처음으로 계획한 산행을 끝 마쳤다. 그것도 눈 길 22km를 러셀하면서 13시간 40분만인 오후 5:52분에 도착했다. 이렇게 무모하기까지 한 도전에 성공하면 성취감에 눈물이 쏟아지고, 감격에 겨워 환호성도 지르고 싶고, 최소한 가슴이라도 두근거릴 줄 알았다. 그러나 감흥도 없고, 그저 담담할 뿐이다. 산행 후기를 쓰는 이 순간도 감동은 남아있지 않다. 밀린 숙제를 겨우해서 그런가?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언제쯤 산행을 하고 나서도 감동이 잔잔하게 밀려오고, 그 여운이 오랫동안 남아있는 즐길 줄 아는 그런 산행을 할 수 있을까? 지금은 그런 산행이 아득하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시도해 볼 생각이다. 또 하나, 흙길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끝) 2012.03.17 Mabre 마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