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2012. 3. 5. 14:23
▲▲▲ 제28차(삽당령-닭목재) ▲▲▲
o 산행일시 : 2012년 03월 02일(금) - 03일(토) (무박2일)
o 산행인원 : 그린산악회 산우님 31명과 함께
o 산행코스 : 삽당령-석두봉-화란봉-닭목재
o 산행거리 : 14.15km(종주누계거리 638.48km / 백두대간 거리 734.58km 86.92%)
o 산행시간 : 04시16분 - 12시38분 : 8시간 22분(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o 산행날씨 : 눈
▼ 산행 진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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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PS궤적['송암자'님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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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PS상세정보['송암자'님 작성]
04:16 삽당령 들머리 출발
08:21 석두봉
11:54 화란봉
12:38 닭목재 날머리 도착
☞ [산행기는 북진을 함께하는 '대간길' 산방의 "마바르" 형님 후기를 허락을 받아 옮긴다]
❉❉❉ 화란봉에 핀 춘삼월(春三月) 설화(雪花) ❉❉❉
- 白頭大幹 북진 28차 (삽당령~닭목재 14.8km) -
지난번은 한파경보, 이번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
기상청 날씨 예보가 자주 틀리기 때문에 구라청이라고 장난 삼아 부르기도 하지만 올 겨울은 구라 예보가
기다려 질 정도로 정확하다. 그러면 밥 먹듯이 매일 접하는 일기예보의 정확도는 어느 정도 일까?
기상청 발표에 의하면 2010년 일기예보 정확도는 91.9% 오차율이 8.1%에 불과함에도 국민들이 기상청을
불신하는 이유는 심리적인 요인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다른 여러 가지 예측은 진실이 쉽게 드러나지 않을 소지가 있는 반면, 일기예보는 하늘만 쳐다보면 누구나
옳고 그름을 명백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심리학적으로 부정적인 기억이 오래 남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한다. 일년 중 364일 일기예보가 맞았어도, 기상이 나쁠 때 단 하루만 틀리면 이것 한 번이
364번의 좋은 기억을 밀어낸다는 논리다. 올 겨울은 영동지방의 잦은 폭설로 백두대간 구간 산행을 제대로
끝낸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오늘 내려진 대설주의보가 오보이기를 기다렸지만 대관령에 접어들자 눈이 또
내린다. 모레가 경칩(驚蟄)인데도 눈이 온다.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 치고
~중 략~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후 략~
(최승호 님의 「대설주의보」)
작년 12월부터 백두대간 동해안 구간 6번을 내리 도전했지만 6번 모두 폭설로 구간 종주에 실패했다.
오늘도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7번째 또 간다. 웬만하면 공지한대로 진고개~동대산~구룡령까지 가고
싶었지만 국립공원의 만류도 있었고, 올 겨울 이 구간은 아무도 통과한 적이 없어 내린 눈 3m 이상이
그대로 쌓여있는데다가 다시 폭설까지 온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지난 2월초에 길을 잃어 가지 못했던
삽당령~석두봉~닭목재~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까지(약 27km) 가기로 출발하면서 변경했다.
이 구간은 졸업산행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갑자기 변경되어 사전정보도 충분하지 않는데다가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진 상태라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 삽당령 고갯마루에는 가랑눈
2012. 3. 3 오전 04: 09 삽당령
서른 두 명을 태운 버스가 영동고속도로 강릉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강릉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35번 국도를 따라 삽당령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눈이 내린다. 조금씩 잘게 안개처럼 부슬 거리며 내린다.
가끔 차량이 다니는 산간 도로에도 쌓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게 내리고 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사람의
눈길이 닿지 않는 산기슭에는 어느 사이 수북이 쌓아 놓았다. 지난번 러셀해 두었던 등산로 초입 마저 흔
적 없이 지워버린 것이다.
삽당령(揷唐嶺 680m)은 35번 국도 강릉시 왕산면 묵계리와 송현리 사이에 있는 분수령으로 강릉 남대천과
남한강 상류인 송현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옛날 정선 임계 사람들이 강릉에서 장을 봐가지고 오다가 짚고
오던 지팡이를 길에 꽂아놓고 갔다 하여 ‘꽂을 삽(揷)’자를 써 삽당령이 되었다고도 하고, 고개 생김새가
삼지창처럼 세 가닥으로 되어있다 하여 삽달령이라 불려진다고도 한다.
들머리부터 러셀이 되어있지 않아 능선 왼쪽에 있는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눈이 30센티 정도 쌓여있어
별 어려움 나아간다. 배낭과 우의에 내려 앉은 눈은 짊어지고, 땅에 쌓인 눈은 밟으며 걸어간다.
습기를 머금은 눈이라 눈 밟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느낌은 부드럽다.
평탄한 임도를 따라 한참 올라가면 오른쪽에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는게 보인다.
바리케이트 넘어 나무 가지에 매달린 리본을 표식 삼아 눈 속에 파묻힌 길을 찾아 임도를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간다.
등산로임을 알 수 있는 것은 드문드문 나뭇가지에 매달린 얼어붙은 리본이 유일하다.
무릎 높이 정도로 쌓인 눈은 아무리 사람이 다니지 않은 길이라 하더라도 나뭇가지에도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고, 눈 위에도 등산로의 흔적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러나 눈이 1m 이상 쌓이면 지면이 높아져
모든 흔적들이 눈 속에 파묻히기 때문이 길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바라보는 모든 곳이 길인 것 같고, 모든 곳이 길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리본을 찾아 이리저리 눈 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리본이 보이지 않으면 행진이 멈춰서고 지나간 길을 다시
되돌아 온다.
「빽~~」뒤돌아 간다는 신호다. 이 소리도 잦다 보니 이제는 뒤따라 오는 대원들이 한 발이라도 덜 움직이기
위해서 요령을 피운다. 속도가 늦어지고 길을 찾지 못해 선두에서 헤매는 낌새가 보이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라가다가 리본을 찾았다는 소리를 들은 후에야 앞사람을 따라간다. 되돌아 갈 때에는 더 심하다.
선두에서 아무리 외쳐도 못 들은 척 움직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어쩔 수 없이 움직이더라도 좁은 눈 길에
비켜서서 눈치를 살핀다. 선두에서 죽을 힘을 다해서 러셀하는 대원들과는 분명한 대조를 보인다.
○ 칠전팔기(七顚八起)에 도전하는 대원들에게 산이 내리는 선물
2012. 3. 3 오전 6:35 방화선
짧은 알바(정상적인 등산로를 벗어난 것)를 몇 번 되풀이 한 끝에 862봉을 넘어 방화선 시작지점에 6:35분경에
도착했다. 3km 오는데 2시간 30분 걸렸다. 이런 속도로 간다면 대관령은 고사하고 닭목재까지만 간다고 하더라도
남은 거리(약12km) 감안하면 10시간은 가야 한다. 탈출로도 없다.
그러나 마냥 어려운 길만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불이 탈 만한 것들은 모두
베어 버리고 빈터로 둔 긴 띠 모양의 방화선은 장애물이 없어 눈 밭이라도 제법 속도를 낼 수 있다.
방화선 곳곳에 눈을 뒤집어 쓴 수십 년 된 금강송이 늘어서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사진도 찍으면서 눈 위를 뒹굴면서 동심되어 걸어간다. 그러다가 방화선 중간지점에서 7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이른 아침을 먹는다. 앞으로 가야 할 마루금에는 식사를 할 만한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다 함께 눈을 다져
앉을 만한 공간을 만든다. 아름드리 금강송 곁에 앉으니 나뭇가지가 휘어지도록 쌓인 눈이 눈앞에 펼쳐지고 눈은
안개처럼 숲 속에 소리 없이 내려 앉는다. 날씨마저 포근하니 먹지 않아도 배는 절로 부르다.
이렇게 몽환적인 운치야말로 칠전팔기(七顚八起)에 도전하는 자에게 자연이 내리는 선물임에 틀림없다.
설경이 아름다운 방화선 2km를 순식간에 지나고 보니 감춰졌던 욕심이 다시 솟아난다.
닭목재까지 오전 11시까지만 도착하면 오늘 일몰시간 전에 고루포기산을 넘어 대관령까지 갈 수 있다는 계산이
뽑아졌다. 밥알이 위 속에서 굴러다닐 정도로 속도감 있게 앞으로 나아간다.
서로 순서도 바꿔 러셀하면서 눈 없는 평지를 나아가듯 들미재도 지나고 석두봉도 단숨에 올라선다.
쉬지도 않고 물 마실 틈도 주지 않고 폭풍 치듯이 몰아간다.
○ 여성 대원에게도 러셀할 기회를 주세요
마냥 잘 나갈 것 같았던 속도가 980봉 지나 989봉부터 갑자기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간간이 보이던 리본들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날은 밝았지만 안개 눈이 숲 속에 내려 앉아 시야마저 흐리다.
남성 대원들이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제까지 조용히 따라오던 여성 대원들이 자기들이
러셀하겠다고 나선다. 남자들은 뒤로 빠지란다. 얼씨구 좋다. 남자들이 뒤로 빠지고 여성 대원들이 앞에서는 여성
러셀 대형으로 대열을 정비해서 다시 전진한다.
처음에는 호기있게 속도감 있게 나아간다.
눈 속으로 다리가 허벅지까지 빠지면서 허리가 휘청거려도 씩씩하게 나아간다.
길 안내를 위해서 뒤따라가는 남자 대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무조건 전진한다.
얼마 가지 않아 힘에 부쳐 다리가 후들거리는 모습도간간히 보이고, 이를 악물고 러셀하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지만 남성들은 뒤따라 가면서 이를 즐긴다. 10분도 되지 않아 그만두겠다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는 여성대원
들의 마음이 드러나 보인다. 그렇게 은근히 즐기는 것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대원들을 이끌고 엉뚱한 곳으로
한참을 가고 나서야 알바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 자리에서 그대로 뒤돌아 선다. 자동적으로 남자들이 앞서는 러셀대형으로 바뀌었지만 여성대원 어느 누구도
러셀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조용히 숨 죽이고 말없이 따라올 뿐이다. 이때부터 길 없는 눈 속을 한 시간
가량 헤맨 끝에 눈 속에 파묻힌 노란 리본을 겨우 발견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상 마루금으로 접어들 수 있었다.
그렇게 다섯 시간 동안 눈밭을 헤맨 끝에 정상이 부챗살처럼 꽃잎이 펼쳐졌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화란봉
(花蘭峰 1,069m)에 올랐더니 란(蘭) 꽃은 보이지 않고 설화만 피어 있었다. 올 겨울은 다양한 눈꽃을 지겨울 정도로
자주 많이 본다. 눈이 나뭇가지에 쌓인 설화(雪花), 나뭇가지에 붙은 습기가 갑자기 내려간 기온에 얼거나 구름이
스쳐 가다가 얼어붙은 상고대, 마지막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에 설화나 상고대가 녹아 흐르다가
얼어 붙어 생긴 빙화(氷花)가 있다. 이중에서 추운 날이 지속되면 계속해서 자라나는 상고대가 가장 멋있다.
이곳 화란봉 상고대는 한 이틀 자란 상고대와 갓 피어나고 있는 설화가 지금 절정이다.
이런 설화에 취하고 하루 종일 눈 밭을 허우적거린 끝에 12시 39분, 8시간 30분만에 전 대원이 동시에 닭목재에
도착했다. 오늘도 계획한 구간종주를 마치지 못했다. 그러나 아쉬움은 없다. 이런 환경에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임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 그린 산방도 기러기처럼 함께 날아보자.
이맘때 쯤이면 겨울을 나기 위해서 날아왔던 기러기들이 고향으로 되돌아간다.
기러기들은 한번 이동을 시작하면 4만km 정도를 날아간다. 이때 선두에 선 리더 기러기의 힘찬 날갯짓이 기류의
양력을 만들어 동료 기러기가 혼자 날 때 보다 수월하게 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선두는 대장 기러기가 아니라 그날 컨디션이 좋은 기러기가 맡는다. 그러다가 선두에 나선 기러기가 지치면 뒤로
물러서고, 다른 기러기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를 반복하면서 머나먼 길을 함께 간다.
긴 여정 동안 기러기들은 끓임 없이 울음소리를 내면서 거센 바람을 가르며, 힘들게 앞장서고 있는 동료를 격려한다.
그러다가 함께 날아가던 기러기가 병에 걸리거나 낙오되면 두 마리의 다른 기러기들이 대열에서 이탈해 그 기러기를
보호하는데 낙오된 기러기가 날 수 있을 때까지, 아니면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함께 머물다가 다른 기러기들의
대열을 따라 간다고 한다. 동료들과 함께 가지 않은 외기러기는 결코 멀리 날아가지 못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함께 나아가야 멀리 오래 갈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 그린산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지켜보면서 한없는 서글픔과 분노를 느낀다.
선거 과정상 벌어지는 추한 모습도 그렇지만, 선거가 끝난 후 승자와 패자들간에 벌어지는 반목(反目)과 갈등은
이미 그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이런 모습들이 여러분들의 참 모습인지 묻고 싶다.
모두 가슴을 열고 뒤돌아 보시라. 단지 산이 좋아 그린산악회 식구가 된 만 삼천 여명의 회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고민해 보시라. 그것을 안다면 이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뒷산에서 뻐꾸기가 울고
앞산에서 꾀꼬리가 운다.
새소리 서로 부딪히지 않는데
마음은 내 마음끼리도 이리 부딪히니
나무 그늘에 좀 더 앉아 있어야겠다.
(함민복 님의 「그늘 학습」)
산에는 다른 것들이 서로 섞여있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어울려 살아간다.
그러나 그 산을 찾는 우리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할까? 나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며,
오감(五感)을 막고 산의 참된 가르침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끝)
2012.03.03
Mabre 마바르
▼ 눈내리는 삽당령 들머리 도로표지판
▼ 눈 덮인 방화선과 멋진 소나무들. ['마들'형님 촬영]
▼ ['마들'형님 촬영]
▼ ['마들'형님 촬영]
▼ 방화선의 소나무 아래에서 아침식사.
▼ 된비알을 러셀하며 오른 석두봉 정상
▼ 지난주 한팀이 지나갔기에 주중에 내린 눈에도 한참 수월하다.
▼ ['마들'형님 촬영]
▼ ['바위산'형님 촬영]
▼ ['고내리' 촬영]
▼ 오늘이 올겨울 마지막 설화와 상고대를 보는걸까?
▼ 힘들게 마지막 봉우리인 화란봉에 도착
▼ 화란봉 ['마들'형님 촬영]
▼ 화란봉 정상에 오른 산우들
▼ 추위에 카메라가 작동되지 않아 한컷만 찍으면 '밧데리없음' 경고창이 뜬다.
▼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닭목재에 도착
▼ ['마들'형님 촬영]
▼ ['마들'형님 촬영]
▼ 주문진항 ['바위산'형님 촬영]
▼ 갈매기의 비행 ['바위산'형님 촬영]
젊은 그대 / 김수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