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차(11.02~12.05)

제15차 15구간(하늘재-벌재)

실미도 2011. 9. 5. 16:47
      ▲▲▲ 제15차 15구간 (하늘재-벌재) ▲▲▲ o 산행일시 : 2011년 09월 02일(금) - 03일(토) (무박) o 산행인원 : 그린산악회 산우님 37명과 함께 o 산행코스 : 하늘재-포함산-만수봉갈림길-부리기재-대미산-차갓재-황장산-벌재 o 산행거리 : 27.1㎞ (종주누계거리 381.78km / 백두대간 거리 734.58km 51.97%) o 산행시간 : 02시00분 ~ 15시07분 : 13시간 07분 (황장산에서 2시간여 대기시간 포함) o 산행날씨 : 맑음 / 시원한 바람으로 가을산행 분위기 산행 진행도 1.
      산행 진행도 2.
      GPS 자료[송암자님 작성]
      02:00 하늘재 들머리 출발 02:49 포함산 04:00 마골치(만수봉 2.1k, 포함산 2.9k, 하늘재 4.5k) 06:17 1,032봉 06:40 1,062봉 07:01 부리기재 07:32 대미산 - 아침식사 07:50 출발 08:01 눈물샘 08:07 1,051봉 (문수봉 갈림길) (대미산 0.8k, 황장산 6.3k) 08:48 981봉 09:04 백두대간 중간지점(평택 여산회 설치 표지석) 09:28 차갓재 09:35 64번 고압송전철탑 09:39 백두대간 중간지점(지리여장군, 백두대장군 장승) 09:52 작은차갓재 10:40 황장산(1,077m)-후미 도착까지 기다림 12:20 출발 12:50 황장재 13:01 985봉 13:43 1,004봉 14:01 폐백이재 14:14 928봉 전위봉에서 후미 도착까지 기다림 14:15 헬기장 15:02 의금부도사 완산 이공 묘지 15:07 벌재 날머리 도착 ☞ [산행기는 대간길을 함께하는 "마바르" 형님의 후기를 '대간길' 산방에서 옮긴다] ❉❉❉ 백두대간 중간지점을 통과하다. ❉❉❉ - 白頭大幹 북진 15차 (하늘재~벌재 30km)- 영원한 일등, 영원한 꼴등도 없다. 지난 8월 27일부터 열리고 있는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보면 이 말이 실감난다. 남자 장대 높이뛰기의 스티븐 후크(29, 호주), 100m 세계기록보유자 우사인 볼트(25, 자메이카,) 110m허들 다이론 로블레스(25, 쿠바), 여자 장대 높이뛰기 이신바에바(29, 러시아) 이들은 어느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는 세계 일인자였기에 어떤 기록으로 일등을 하느냐에 대한것만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들에게 깃든 아주 미세한 자만과 방심이 새로운 도전자에게 일등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것은 누구에게나 많은 기회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부단한 노력이 계속되지 않으면 지금의 자리조차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산행을 하고, 백두대간 종주를 하고 있는 우리들의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깟 긴 종주 산행 몇 번하고, 조금 빨리 걸었다고 자만과 방심이 마음에 깃드는 순간 산은 어김없이 그에 걸 맞는 호된 벌과 고통을 주어왔다. 그러함에도 산행이 거듭 될수록 교만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마음 주변을 맴돌고 있다. 이렇게 어리석은 마음이 사라지기를 다잡고 다잡으며 산행을 시작한다. 이번 구간은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연결하는 고개인 하늘재(계립령)를 출발하여 포암산, 대미산, 황장산을 거처 벌재까지 월악산 국립공원 남측 경계선을 들락거리며 30km를 간다. 백두대간은 지리산에서 여기까지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 충청남북도를 동서로 가르면서 북동진하여 왔다. 그러나 하늘재부터 벌재를 지나 저수령까지는 정동진한다.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옛길 하늘재(鷄立嶺 525m) 9월 2일 밤 10시 30분 서울 사당동을 출발한 버스는 다음날 새벽 2시에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에 도착했다. 하늘재(鷄立嶺)는 약 2,000년 전에 개척된 우리나라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고개가 이름처럼 하늘에 닿지 않듯이 경북 영주시에서 오르는 사면은 잘 닦여진 2차선 포장도로가 고개 정상까지 나있어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의태자의 전설이 깃든 충주 미륵사지에서 고개 정상까지 오르는 사면 1.8km는 흙 길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어 2천 년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 고개 정상에 내려서니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천여 년 전, 고려에 나라를 빼앗긴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麻衣太子: 베옷입고 草根木皮로 여생을 마쳤다 하여 붙여진 이름)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심정으로 저 별빛에 길 밝히며 이 고개를 넘었을 것이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들뜬 마음까지 완전히 지울 수 없더라도, 잃은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마의태자의 염원을 잠시나마 생각하며 포암산을 오른다. (강원도 인제에 있는 「마의태자」노래비) 행치령 고개 넘어 백자동 고개 넘어 산새도 오지 않는 깊은 산골 갑둔리 달빛보다 더 푸른 천추의 그 푸른 한 나라를 찾겠노라 그 큰 뜻을 품은 채 어찌 눈을 감으셨나 마의태자 우리 님 하늘이 버리셨나 바람도 스산하다 무덤조차 잃어버린 첩첩산중 김부리 꽃보다 더 붉은 망국의 그 붉은 한 세월아 말을 하라 통한의 그 역사 어찌 눈 감으셨나 마의태자 우리 님 ○ 랜턴 불빛 따라 포암산 관음재 꼭두바위봉도 지나서 1034봉까지 포암산을 오르는 길은 성벽 좌측으로 잠시 돌아가다가 이내 가파른 바위 길을 만난다. 짧은 너덜도 지나고, 크기가 제 각각인 바위, 길게 누운 바위, 평평한 바위와 끝이 없을 것 같은 바위길을 오르고 또 오른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랜턴 불빛이 비치는 한 평 정도의 발 아래 땅과 하늘의 별 그리고 산골 마을 불빛뿐이다. 산을 오르는 거친 숨소리와「평평한 바위에 앉아 별 좀 보고 가자」는 누군가의 외침마저 메아리 되어 어둠 속에 잠긴다. 산의 높고 낮음에 관계 없이 산행을 시작하고 나서 2~3시간까지는 전문산악인 이라 하더라도 초보자와 똑같이 누구나 다 힘들다. 차이가 있다면 인내의 차이뿐이다. 가슴이 떠질 것 같고, 종아리 근육이 곧 끊어질 것 같아도, 갈증으로 입술이 타 들어 가더라도,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정해진 곳까지 말없이 간다. 「잠깐만 쉬어 가자」 「물 한 모금만 마시고 가자」는 말이 목구멍으로 밀고 넘어오더라도 말을 삼키며 끝까지 가고 또 갈뿐이다. 쉬는 곳, 그 곳은 정하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 고통을 같이 나누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몸이 안다. 9월이라 날씨가 제법 선선하지만 가파른 바위 오르막에는 바람마저 잠잠하다.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힐 무렵, 출발한지 50분만에 포암산 정상에 올라선다. 포암산(布岩山 962m)은 월악산 국립공원 가장 남쪽에 있는 산으로 하늘재에서 바라보면 큰 베를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인다(옛이름, 베바우산)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0평 남짓한 정상에 37명의 대원들이 빽빽이 둘러앉아 5분 남짓한 휴식을 만끽한다. 그 짧은 시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능숙하게 처리한다. 거친 호흡도 가다듬고, 간식 먹고 물 마시고 볼일도 보면서 토막 잠까지 자면서 증명사진까지 찍는다. 어떤 행동도 허물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인간 본연의 순수한 모습들이 너무 아름답다. 일본 오사카 지역으로 올라오고 있는 태풍 달라스의 영향으로 정상에는 바람이 제법 거칠다. 지난 여름의 무더웠던 바람은 어느 사이 물러가고 찬 기온을 묻혀온 바람은 상쾌하다. 낮시간이 한결 짧아져 오늘 일출 시간은 6시라고 한다. 해가 점점 짧아져 랜턴 켜고 산행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사방이 깜깜한 암봉 암릉 능선에 이어 부드러운 흙 길, 만수봉 삼거리에서 입산금지 울타리를 타고 넘어 우회전하여 조망이 좋다는 941봉과 급한 비탈 길을 오르내리면서 꼭두바위봉을 지나 1034봉에 올라서니 비로소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 부드러운 능선 길은 대미산 지나서 차갓재까지 이어지고 하늘재에서 시작되는 암릉 암봉과 능선 곳곳에 있던 바위며 잡석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1034봉부터 대미산 지나 차갓재까지는 조그만 잡석도 찾기 힘들 정도로 고운 흙 길이 이어진다. 특히 1062봉까지 능선 길은 평평한 능선 길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미역줄 나무와 참나무가 빽빽하여 시야만 가릴 뿐 나머지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태풍이 몰고 온 시원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고, 하늘은 청명하고 공기는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거친 바람에 키 큰 갈참나무 굴참나무는 비명을 질러대지만 사람이 지나가는 높이의 능선은 크고 작은 나무들이 바람의 속도를 줄여주어 기분이 좋을 정도다. 바람에 떠밀려 능선의 부드러움에 산행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시간은 7시를 지나고 산행을 시작한지도 5시간이 흘러 아침 먹을 시간도 지났다. 「밤 좀 먹고 가자」는 소리는 바람에 날려 선두에 전달되지 않는지 바람을 핑계되며 계속 달린다. 제법 너른 공터도 그냥 지나친다. 뱃속은 꼬르륵거리지만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따라간다. 부리기재도 통과 한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식당이라도 찾아서 아침을 먹자」고 할 줄 알았지만 다행히 대미산 정상에 올라서니 아침을 먹는다고 한다. 감격할 수 밖에 없다.보통 때 같으면 정상에 올라서면 정상 표지석 끼고 사진부터 찍는다. 그러나 모두들 사진 찍는 것은 뒷전이고 좁은 정상에 엉덩이를 서로 붙이고 앉아 도시락부터 풀어 헤친다. 비록 햇반에 반찬은 열무김치 한 가지뿐이지만 시원한 날씨와 땀을 적게 흘린 탓으로 밥맛이 꿀맛이다. 조금 부족한 듯 하지만 허기를 면하고 보니 정상에서의 조망이 눈에 들어온다. 대미산(大美山 1,115m)은 멀리서 보면 정상부문만 검은 눈썹처럼 솟아 올랐다 하여 대미산(黛眉山)으로 불렸으나 퇴계 이황선생이 현재의 이름인 大美山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동쪽으로는 멀리 소백산과 서쪽으로는 주흘, 조령, 희양, 속리산까지 보인다고 하여 바라보지만 아직은 모양과 그 이름들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정상 가장자리에는 억새와 떡갈나무들이 사람 키보다 높게 자라서 가까운 곳의 조망을 가린다. ○ 나 홀로 걸으며 생각하며 차갓재까지 가는 능선 길은 오르내림이 완만한 흙 길. 홀로 걷고 싶은 욕구가 불현듯 솟구친다.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한다. 거의 달리다시피 하는 선두팀보다 앞서가면 이들의 속도에 추월 당하거나 아니면 같이 가면 그들과 같이 빠른 속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모처럼 찾아온 고독을 즐길 수 없다. 타이밍을 계산하여 이들을 뒤따라 바로 출발한다. 우리 팀은 이미 선두, 중간, 후미그룹이 자연스럽게 구분되어 있어, 어지간해서는 그룹간 구성원들이 잘 바뀌지 않는다. 그 틈새를 노려 선두그룹에 바짝 붙어서 따라간다. 나 혼자서 간다. 선두와 중간그룹의 누구로부터도 방해 받지 않고 걸어간다. 눈물샘 갈림 길도 지나고, 문수봉 갈림길도 지나서 간다. 지리산과 백두산으로 가는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도 지난다. 거친 바람에 은빛 잎을 반짝이는 싸리나무 숲길도 지나고, 미역줄나무 군락지도 지난다. 외로운 무덤도 지나서 간다. 하늘끝까지 자란 낙옆송 숲길을 지날 때에는 떨어진 낙엽을 스폰지 밟듯이 살금살금 밟으며 걸어 가기도 한다. 넘어진 나무가 길을 막고 있을 때에는 엎드려 지나가야 할지, 타고 넘어야 할지 아니면 우회해서 가야 할지 고민도 하면서 지나간다. 숲 속의 식구들은 세찬 바람이 불어오면 그 바람과 한 몸 되어 춤을 추고, 바람이 그치면 꼿꼿한 자세로 우아함을 뽐낸다. 비가 내리면 내리는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자연에 순응하며 어울려 살아간다. 저들과 한 몸 되어 걸어간다. 어느 사이 머리와 가슴에 가득했던 망상은 사라지고 없다. ○ 백두대간 중간지점이라는 차갓재 차갓재로 가는 927봉 내리막에는 경기 평택 여산 산악회에서 세운 백두대간 중간지점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정성을 기울여 세운 키 높이 돌탑 위 검은 대리석에는 백두대간 734.65km 천왕봉, 진부령까지 367.32km라 새겨져 있다. 이곳에서 40분 정도 더 내려가 있는 차갓재에도 백두대간 중간지점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 세워진 표지석은 나지막하여 볼품없지만 양 옆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백두대장군(白頭大將軍)과 지리여장군(智異女將軍)이 호위하고 있다. 육안으로는 어느 지점이 정확한 중간지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 월악산 국립공원구역 안 어느지점인 것은 확실하다. 국립공원에서 하여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이런 것을 바로잡아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혹시 제 후기를 보신 국립공원 직원이 계시면 꼭 구분하여 조치하여 주실 것을 부탁드림) 중간지점에 대한 시시비비(是是非非)는 국립공원에서 가려주실 것으로 믿고, 백두 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새겨져 있는 글을 옮겨본다. (차갓재에 새워진 중간지점 표지석 뒷면에 새겨진 글) 통일이여! 통일이여! 민족의 가슴을 멍들게 한 철조망이 걷히고 막혔던 혈관을 뚫고 끓는 피가 맑게 흐르는 날 대간 길 마루금에 흩날리는 풋풋한 풀 꽃 내음을 맘껏 호흡하며 물안개 피는 북녘 땅 삼재령에서 다시 한 번 힘찬 발걸음을 내 딛는 니 모습 보고싶다. 차갓재라 불리게 된 어원은 찾을 수 없다. 어느 산행 후기에 「황장산 아래 밖이라는 뜻」이라 적혀있지만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처갓집이라는 말이 연상된다. 내가 어릴적에는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수없이 듣고 살아왔지만 요즘은 옛말이 되고 말았다. 나이 들어 지금이야 처갓집과 이리저리 얽힐 일이 별로 없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보통 문제가 아닌 것 같다. 201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20년 전보다 처가살이하는 남성은 3배(5.4만 명) 늘고 시집살이 하는 여성은 절반 넘게(19.8만명)줄었다고 한다. 여성 상위시대인 요즘, 그리고 아들만 둘인 나, 일찌감치 냉수마시고 속 차려야 하겠다. ○ 북적거리는 황장산 작은 차갓재에 도착하니 적막함은 사라지고 청주에서 왔다는 한 무리의 등산객들로 붐빈다. 30여명은 될 듯한 일행들은 사진 찍은 사람 황장산을 향해서 오르는 사람들로 소란스럽다. 이들의 대열 속에 묻히면 산행이 힘들어 질 것 같아 황장산 오르막을 속도감 있게 올라간다. 길은 폭신한 흙에서 바위와 암릉 길로 바뀐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깔려있지만 9부 능선까지는 밧줄 없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경사는 밋밋하다. 정상부근 봉우리에 올라서면 깎아지른 암벽이 정상까지 이어져 있고, 기품이 돋보이는 소나무들이 암릉의 여백을 채우고 있다. 이런 멋진 곳에서 나 혼자 소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평평한 바위에 걸터앉아 먹다 남은 사과 반쪽을 깨문다. 시원한 바람은 땀 젖은 머리칼을 말리고, 입 안은 풋사과 향기 가득하다. 걸터앉은 바위 아래로는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꾸불꾸불 이어지고, 생달 마을 농가와 손바닥만한 논밭들이 가을 빛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늘에는 뭉개 구름이 드문드문 떠있고, 가까이로는 나지막한 운달산과 먼 곳 에는 주흘산과 조령산이 작게 보인다. 그리고 암릉 절벽 가장자리에는 쑥부쟁이 꽃 몇 송이도 초가을 햇살을 받으며 피어있다. 황장산(黃腸山 1,077m)은 월악산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조선시대에는 작성산이라 불렀고, 일제 강점기에는 황제의 정원이라는 뜻의 황정산(皇廷山)으로 불리울 정도로 주변의 풍광이 무릉도원 같이 멋지다. 북서쪽으로는 단양의 명산 도락산과 수리봉이 둘러싸고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북서능선과 남동능선이 험한 암릉으로 이어져 있고 암릉 동남쪽이 깎아지른 절벽이다. ○ 번거로움을 피해서 조용하던 황장산 정상이 등산객들도 북적거린다. 우리 팀과 청주에서 온 산악회원들 30~40명이 좁은 정상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출 일몰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벌재까지 가야 하지만 벌재에는 국립공원 직원들이 출입을 막고있다. 국립공원 직원들과 서로 부딪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좁은 정상에서 자기 일행들이 전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산 정상에서 이렇게 여유롭고 자유롭게 기다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불지만 춥지 않고, 햇볕은 쬐지만 덥지 않다. 거기다가 날씨까지 최상이다. 여기 저기 삼삼오오 둘러앉아 장난도 치고 간식도 펼친다. 소풍 나온 기분이다. 기다림이 지루하지도 않고, 간간히 늦어지는 후미가 걱정되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몇몇은 불어오는 바람결에 오수를 즐기고, 등산화를 벗어 던지고 평평한 바위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따라간다. 땡이하트는 정상이 좁을 정도로 왔다리갔다리 하면서 분위기를 띄운다. 평화로운 분위기에 취해 속리산에서 결성된 앉은뱅이 어깨춤 풀 멤버들의 멋진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조금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다. 2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안산다리에서 출발하여 황장산만 오르는 청주 산악회원들에 이어 우리 팀 후미들도 정상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청주 팀이 황장산 정상 표지석을 둘러싸고 단체사진을 찍고 출발한다. 뒤이어 우리 팀도 실로 오래간 만에 전원이 참석한 단체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는 한 사람만 빼고 찍는다. 벌재까지 가는 길은 두 번씩이나 오른 길이지만 처음 가는 길처럼 생소하다. 밧줄도 타고 급경사 비탈길도 내려서 간다. 얼마 가지 않아서 먼저 출발한 청주 산악회를 추월해서 우리 팀들만 줄줄이 이어간다. 칼날능선에 처진 밧줄도 잡고서 넘고 감투봉(1,042봉)도 지나서 간다. 오른쪽이 절벽인 암릉 능선을 지날 때에는 멋진 풍광도 즐기면서 걷는다. 벌재로 내려가는 마지막 봉우리 928 봉우리 절벽 소나무 아래에서 마지막 휴식을 즐긴다. 좁은 공간에 오밀조밀 모여 앉아 호흡을 맞춘다. 여기서부터 벌재까지는 목소리는 물론 발자국 소리까지 낮춰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간다. 하고 싶은 말은 눈 빛과 몸 짓으로 이야기 하면서 37명이 한 몸 되어 줄줄이 내려간다. 천문대장이 간 발자국만 따라서 간다. 그 길이 없는 길이라도 우리모두 대장을 믿고 따라간다. 오로지 그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번거로움을 피해 단양과 문경을 잇는 975번 지방도로에 내려서니 15시 30분이다. 모든 대원이 똑같이 약 13시간 30분 정도 걸렸지만 기다린 시간을 감안하면 이번구간은 약 11시간 만에 종주했다. 산행하기 좋은 가을 내년에도 변함없이 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넘치는 열정도 언제 시들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이 가을, 이 열정 오는 듯 사라지기 전에 오지 않은 내일도 걱정하지 말고 미지의 세계로 나아 가보자. (끝) 2011.09. 3 Mabre 마바르 별이 총총한 까만 밤에 하늘재 들머리 출발
      포암산에서 '산토끼얌'님과 [마들님 촬영]
      포함산에서 '나한수'님과 [비둘기님 촬영]
      만수봉 갈림길, 좌측은 만수봉, 방향표지가 없는 우측의 펜스를 넘어 출입금지 구역이 대간길이다.
      충북 제천 덕산면 억수리와 경북 문경 중평리를 이어주는 부리기재
      부리기재 [하얀소님 촬영]
      오늘의 최고봉인 대미산
      지금껏 불던 바람이 정상에서는 잠잠하여 좁은 정상에서 엉덩이를 맞대고 아침식사.
      대미산 정상에서 '애뫼'와 [하얀소님 촬영]
      아래로 70여m를 내려가야 하는데 물이 충분하여 그냥 지나친다.
      눈물만큼이 아니라 제법 수량이 풍부한 눈물샘에서 물을 보충하는 '로하스' [바위산님 촬영]
      눈물샘의 유래에 대한 안내표지판 [바위산님 촬영]
      문수봉 갈림길인 1,051봉-선두그룹 여성산우들
      981봉 [하얀소님 촬영]
      평택 여산회에서 설치한 백두대간 중간지점 표지석
      백두대간 중간지점에서 선두그룹 [하얀소님 촬영]
      '거'씨 형제 '거보'와 '거목' [하얀소님 촬영]
      [하얀소님 촬영]
      차갓재-아무 표지가 없다. 무덤과 전선없는 전봇대가 서있다.
      64번 고압송전철탑
      또 다른 백두대간 중간지점이라는데... 두 곳의 중간 지점에 표지석 하나 세울까! 선두그룹 떼사진 [하얀소님 촬영]
      울창한 낙엽송림 [하얀소님 촬영]
      문경 생달리로 내려가는 작은차갓재-한 산우가 생달리로 알바를 하여 1시간 이상 지체하게 됨
      가운데 대미산과 지나온 마루금
      황장산 조망
      황장산 오르는 암릉구간은 경관이 빼어나지만 주위를 해야한다.
      우측은 절벽이라 로프를 의지해 절대 조심!
      황장산 오르는 동안 멋진 암릉과 소나무, 조망과 달리 정상은 둘레의 숲으로 조망은 별로인데 그늘에서 쉬어가기는 좋다. 이 곳에서 후미가 도착하기까지 1시간40여분 기다린다.
      선두그룹 떼사진
      뒤늦게 도착한 '탱이하트'를 비롯한 산우들이 선두그룹과 한 컷 촬영해야 한다는 떼거지에...[마들님 촬영]
      황장산에서 '애뫼'와 '개봉' [하얀소님 촬영]
      황장산에서의 달콤한 휴식 [바위산님 촬영]
      [바위산님 촬영]
      심심해서 별짓다해본다.[바위산님 촬영]
      황장산에서 [마바르님 촬영]
      후미가 도착하여 간만에 전체 떼사진을 남긴다. [바위산님 촬영]
      황장산에서 황장재로 내려가는 등로도 매우 가팔라 주위해야한다. 생달리에서 출발하여 온 청주의 다른 산방대원과 뒤섞여 로프구간에서 정체되어 있다.
      황장재 내려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마들님 촬영]
      충북 단양 방곡리 59번 국도로 내려가는 황장재
      985봉에 올라 도락산 조망
      1,004봉 직전의 암봉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대단하다.
      1,004봉에서 '하얀소', '송암자', '홍원', '거목'
      폐백이에서 '애뫼', '개봉'
      928봉 직전에서 또 후미가 올때까지 기다린다.
      마지막 928봉을 지나 우측으로 꺽어 내려 와 헬기장을 지나 우측 군진지를 따라 공비산행
      의금부도사 완산 이공 묘지에서 좌측 골짜기로 내려선다
      59번 국도에 내려선다.
      ♬ 슬픈 그림같은 사랑 / 이상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