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4차 14구간 (이화령-하늘재) ▲▲▲
o 산행일시 : 2011년 08월19(금)~20(토)
o 산행인원 : 그린산방 산우님 39명과 함께
o 산행코스 : 이화령-조령산-신선암봉-문경새재-마역봉-부봉-탄항산-하늘재
o 산행거리 : 18.36km(종주누계거리 354.68km / 백두대간 거리 734.58km 48.28%)
o 산행시간 : 02시40분~13시08분(10시간 28분, 식사 및 휴식시간, 알바 1시간20분 포함)
o 산행날씨 : 비/안개/흐림
▼ 산행 진행 개념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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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 진행 개념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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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0 이화령 들머리 출발
02:57 두번재 헬기장
03:05 세번째 헬기장(알바시작, 04:45분에 다시 원위치)
05:06 조령샘
05:33 조령산
06:45 신선암봉
08:51 깃대봉 갈림길
09:09 문경새재(제3관문) 09:33 아침식사 후 출발
09:57 마역봉(마패봉)
10:16 북암문
10:56 동암문
11:10 부봉 삼거리
11:18 부봉
11:27 부봉 삼거리
12:25 탄항산
13:08 하늘재 날머리 도착
☞ [산행기는 대간길을 함께하는 "마바르" 형님의 후기를 '대간길' 산방에서 옮긴다]
❉❉❉ 조령산과 문경새재(조령3관문) ❉❉❉
- 白頭大幹 북진 14차 (이화령 ~ 하늘재 18km)-
몸도 덜 풀었는데 또 간다.
설악산 태극종주를 난산(難産)하고 5일만에 백두대간 종주를 하려니 몸이 다소 무겁다.
사서 한짓이라, 해산(解産)했다고 마누라에게 몸보신 시켜 달랬다가는 핀잔만 들을 것이 뻔하니 그럴 수 없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혼자서 몇 일을 끙끙대다가 금요일 밤이 되자 자동으로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그렇게 무거웠던 몸도 산우(山友)들을 보자마자 씻은 듯이 가벼워지고 2~3주 만에 보는 얼굴인데도 10년 지기
만나듯이 반갑고 할 이야기도 많다. 유유상종(類類相從),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이다.
오늘구간은 경북 문경과 충북 괴산 경계지점인 국도 3호선이 지나가는 이화령(梨花嶺, 548m)에서 출발하여
조령산(鳥嶺山, 1,017m), 신선암봉, 조령3관문(646m)을 지나서 마패봉(마역봉, 940m)을 가파르게 올라갔다가
부봉(935m), 탄항산(월항3봉, 851m) 지나서, 충북 수안보 미륵사지에서 문경 길평리로 넘어오는 고개길인
하늘재(527m)까지 간다. 구간거리는 약 18km로 짧지만 암봉과 암릉이 연이어져 어렵고 위험한 구간 중 하나이다.
오늘 산행 들머리인 이화령의 한자를 직역하면 인근에 배꽃이 많아야 하지만 배나무는 거의 구경할 수 없다.
조선시대의 지명은 이화령(梨花嶺)이 아닌 이화현(伊火峴)으로 표기되어 있어 지금의 뜻과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지명 변천에 대하여 일제강점기 때 바꿨다는 등 아직 정설은 없지만 고개 아래 「충북 연풍의 이유릿재를 한자로
옮긴것이 이화령이다」라는 주장이 가장 근거 있어 보인다.
○ 조령산(鳥嶺山, 1,017m) 오르면서 왕(王) 알바한 사람들
새벽 02:40분 이화령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비안개가 자욱하여 앞을 분간하기 힘들다.
우의를 입은 사람과 비 맞고 가는 사람들의 비율이 반반이 될 정도로 날씨가 어중간 하다.
비가 오는 것도, 안 오는 것도 아니다. 출발하기 전「오늘은 8시간이면 산행이 끝나니 온천에서 온천 욕을 마음껏
즐기셔도 시간이 넉넉해서 서울에는 해 떨어지기 전에 갈 수 있다」는 천문대장의 장담에 마(魔)가 끼었을까
아니면 말이 씨가 되었을까?
이화령에서 조령산을 오르는 길은 산 허리를 부드럽게 돌아가는 우회 길과 산 능선을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는 능선
길이 있다. 대부분의 종주 팀들이 다니는 우회 길 대신 우리는 능선 길을 택하여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
올라갔다. 오르는 길은 내린 비에 젖어 미끄럽고, 20여분 걸려 오른 두 번째 헬기장 주변도 사람 키 높이만큼 자란
억새와 잡초, 부슬 거리는 비와 안개까지 더하여 길을 분간하기 힘들게 한다. 그렇지만 조령산까지 가는 능선 길은
외길이라는 확고한 생각에 누군가가 발견한 억새 사이의 길을 아무런 의심 없이 줄줄이 따라간다.
길이 난 방향도 고려하지 않고, 30~40분만 더 가면 조령산이려니 생각하고 뚫린 길을 따라 생각 없이 따라간다.
능선 길이면 조령샘으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당연히 나와야 하지만 나오지 않아도 이상하다는 생각 없이 그냥 간다.
외길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여러 가지 징조들을 무시하고 의심 없이 그냥 간다.
피피선(군용야전전화선)이 길 곳곳에 깔려 가는 길을 방해해도 그냥 간다. 그러다가 끝없는 내리막에 대한 의문과
1시간이 지나서도 나타나지 않는 조령산이 행렬을 멈추게 한다. 그제서야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어느 산 기슭 직선 내리막, 비가 내리는 가운데 40개의 랜턴 불빛이 촘촘히 붙어 줄지어 멈춰서 있다.
여기가 어디쯤인지 어느 방향으로 내려 왔는지 알 수 없다. 단지 절골 방향으로 내려왔을 것이라는 짐작뿐이다.
지도에도 없는 길을 한 시간 정도 내려왔으니 선택 가능한 안전한 방법은 우리가 아는 헬기장까지 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가는 방법뿐이다. 행렬은 그대로 서 있고 선두와 후미대장만 자리를 바꾼다.
마치 기차가 객차는 그대로 두고 기관차만 앞뒤로 바꿔 달듯이 나머지는 대원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뒤돌아 선다.
선두가 후미 되고, 후미가 선두 되어 왔던 길을 다시 올라간다. 기다리는 헬기장은 왜 이렇게 멀고도 먼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곳에서 초 대형 알바 왕복 2시간을 했다. 백두대간 종주 팀들의 수많은 알바 중에서 기억에
남을만한 엉뚱한 알바 중 하나로 기록 되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늘까지 3연속 알바를 한다. 산신께 고사를 지내던지 해야겠다.
지난번 13차 희양산 구간에서 1시간, 설악산 태극종주에서 4시간, 오늘 2시간이다.
3번 모두 공통점은 밤, 부슬비, 짙은 안개 그리고 방심이다. 그 중에서도 방심이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
앞으로 3시간짜리 알바가 남았는데 어디서 할지 기대가 된다. 혼자 해야 할지 아니면 미운 사람 아니면 좋은 사람과
같이 할지는 천천히 생각하기로 한다. 이렇게 2시간 가량을 돌고 돌아서 이화령 15분 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나서야
대원들 모두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는다. 15분 거리를 2시간 걸려 왔던 것이다.
이런 곡절을 겪으며 우회 등산로 따라 조령샘에서 물 한 모금까지 마시고 3시간 만에 조령산 정상에 겨우 도착했다.
「하늘을 나는 새도 넘기 힘들다」는 조령산(鳥嶺山), 그 이름은 와전된 이름이라 한다.
동국여지승람 문경현 산천조에 조령은 속칭 초재(草岾)라 기록되어있다 한다.
초(草)는 억새를 말하는 ‘새’이고, 재(岾)는 우리가 많든 한자로서 음은 ‘재’ 또는 ‘점’이다. 따라서 초재는 새재이고,
우리말로 억새가 날아다니는 ‘새’로 와전된 것을 다시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조령이 되었다 한다.
○ 47개나 된다는 밧줄을 잡고 오르내리면서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며 올라선 조령산 정상은 물 한 모금 마시고 그냥 출발한다. 알바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탓도 있지만 바람이 불어 추위도 느껴지고 안개 때문에 그 멋진 풍광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스틱은 접어서
배낭에 단단히 붙잡아 매고, 장갑도 꺼내 낀다. 암릉과 암릉 구간을 통과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길은 나선다.
여기서 조령3관문까지 5.8km는 암릉과 암봉으로 이어져 있다. 백두대간 마루금 중에서 멋진 풍광으로 손 꼽히는
곳이지만 오늘은 볼 수 없다. 모든 것이 부슬 비와 안개에 잠겨 있다. 바위를 타고 오르고 내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밧줄이 매어져 있다. 매어져 있는 밧줄의 수가 47개나 된다고 하기에 확인하기 위해서 헤아려 보지만 10개
정도까지 헤아리다가 포기한다. 한 곳에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드문드문 있기도 하고, 연달아 있기도 하고,
밧줄에 매달려 오르고 내리는데 신경을 쓰다 보면 금방 잊혀진다. 그러나 느낌으로는 수백 개는 되는 것 같다.
기차 바위처럼 2~30m 정도 되는 긴 밧줄에서부터 1~2m 정도 되는 짧은 밧줄도 있다.
밧줄 1m 간격마다 매듭이 져 있어 미끄럼을 방지한다. 완만한 바위, 수직 직벽, 가파른 경사지 등 두 발로
오르내리기 힘 든 곳에는 어김없이 밧줄이 매어져 있다. 상하로 매어져 있기도 하고 좌우로 매어져 있기도 하다.
밧줄로 시작하여 밧줄로 끝나는 기분이다. 조망 좋다는 신선암봉도 깃대봉 전에 있는 마대바위도 그냥 지나친다.
풍광이 일품이라는 주흘산 주봉과 영봉이며, 봉우리가 아름다운 부봉까지 보지 못하고 지나 간다.
이들 산 능선의 윤곽만 넘나드는 안개 속에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정상적이라면 아침 먹고 마패봉을 지나고 있을 시간인 오전 8시이지만 아직도 암릉에서 밧줄을 타고 있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움켜쥐고, 빈 배낭 메고, 쉬지도 않고 맹물만 마시면서 계속 간다. 이번 구간은 특별하다.
백두대간 전 구간 중에서 유일하게 아침을 매식하여 먹을 수 있는 곳(조령3관문 휴게소)을 지나기 때문에 아침을
준비하지 않고 간단한 간식과 물만 넣고 산행을 시작했다. 4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알바로 6시간 만에 휴게소에 겨우 도착했다.
주인 아저씨의 노련한 유혹에 빠져, 산행 중에는 금기된 약초 막걸리부터 한 잔 들이킨다.
막걸리를 시켰으니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산채 부침개 안주도 당연히 따라 붙는다. 이어지는 콩나물과 버섯이
들어간 라면도 맛나다. 시장이 반찬인지, 정말 맛있는지는 지금은 구분할 수 없지만 따뜻한 라면국물과 막걸리 한
사발이 온 몸을 따뜻하게 데우고 마음까지 푸근하게 한다.
「우리 집에서 약초 막걸리, 산채 부침개, 라면을 먹지 않으면 백두대간은 무효」라고 주장하는 주인 아저씨의
엉뚱한 주장도 애교로 받아들인다. 배도 부르겠다 문경새재에 얽힌 역사와 삶의 흔적들을 잠시 느껴본다.
○ 문경새재의 꿈과 좌절(挫折)
문경새재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조령제3관문은, 조선시대에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 보러 올라가는 길인
추풍령, 죽령과 더불어 대표적인 고개였다. 이 중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 대부분이 문경새재를 이용했던 이유는
문경(聞慶)이란 지명이 「경사스런 소식을 듣는다」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죽령과 추풍령을 넘기 싫어한 이유는 죽령을 넘으면 과거 시험에 「죽죽 미끄러지고」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경새재는 조선팔도 고개 길의 대명사요 영남대로가 지나는 곳이며 사람과 물류의 요충지이며
관방시설로 군사들이 지키고 있어 가장 안정한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재 곳곳에는 선비들의 묵향과 과거 시험의 애환이 남아있다. 조선 시대에 영남 선비들에게 있어 조령은
가문을 일으키느냐 마느냐의 출세 분수령으로 상징되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과거에 떨어진 후 조령을 넘는 기분을 백의조령으로 표현했으랴? 어찌되었던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내외 불문하고 대단했던 것 같다. 과거 시험에 연거푸 낙방한 당나라 두고(杜羔)라는
선비에게 보낸 아내의 시를 소개하면
낭군께선 우뚝한 재주를 지니시곤
무슨 일로 해마다 낙제하고 오십니까?
이제는 그대 낯을 뵙기 부끄러우니
그대여 오시려면 밤중에 오소서
막말로 해마다 과거 시험에 떨어지니 동네 창피스러워 못 살겠다는 말이다. 이에 오기가 발동하여 용맹정진 노력하여
다음해에 급제한 그는 집에는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만 돌았다 한다. 이에 아내가 다시 시를 보냈다.
낭군께선 뜻을 얻고 나이 한창 젊으신데
오늘 밤 어느 술집서 취해 주무시나요
일껏 열심히 공부하라고 구박했더니 보답치고는 고약하다는 말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마는 요즘도 똑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쓴 웃음만 나온다. 결론은 상대방의 형편에 따라서
차별대우하지 말고 이것 저것 계산해서 따지지 말고 있을 때,평소에 잘 하라는 이야기다.
○ 마패봉(922m)에 올라서니
조령3관문에서 마패봉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해발고도 차가 300m에 불과하지만 짧은 암봉을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야 한다. 휴게소에서 막걸리 한 잔에 라면까지 푸짐하게 먹었으니 배가 한 짐이다. 씩씩거리며, 밧줄도 잡아
가면서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산을 지나면서 마패를 걸어놓고 쉬었다고 해서 붙여진 마패봉에 올라서니, 막상 정상
표지석에는 마역봉(馬驛峰) 927m로 적혀있다.
봉우리 이름과 높이가 지도마다 자료마다 제 각각이고 심지어 100m 떨어진 이정표에는 마패봉으로 적혀있다.
어떤 이름으로 하던지 하나로 통일되었으면 한다.
마패봉 정상부터 하늘재까지는 월악산 국립공원 경계선인 능선을 따라서 간다.
부슬비는 그친 듯 하지만 아직도 안개가 자욱하여 가시거리가 짧아 조망은 포기하고 걸어간다. 능선 왼쪽으로는
아름들이 금강송이 늘어서있고 길은 잘 정비되어 있다. 500m 마다 깔끔하게 세워진 이정표가 인상적이다.
하루 종일 부슬 거리는 비에 땅이 젖어 있지만 산행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고, 날씨까지 덥지도 춥지도 않아
산행하기에 적당하다. 그렇다고 숨이 찰 정도로 힘든 오르막도 없고, 가파른 암릉이나 험난한 구간마다 나무 계단이
놓여있어서 물 마시기 위해서 잠깐 멈춘 시간만 빼고는 그냥 걸어간다.
성터 부근에 다다르니 20여명은 될 듯한 한 무리의 등산인 들이 앞서 간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에서 그들을 가볍게
추월해서 부봉 갈림 길 삼거리에 도착하니 돌무더기 위에 배낭 서너 개가 놓여있다.
○ 내친김에 쉬지 않고 부봉을 지나서 하늘재까지
앞서간 우리일행들의 배낭이다.
오늘 새벽 출발할 때 「오늘은 구간거리도 짧으니 백두대간 주 능선에서 500m 벗어난 부봉에 잠시 들러 조령산의
멋진 모습을 즐기라」는 말이 생각났지만 그냥 지나친다. 안개로 덥혀 올라간들 조망을 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어지는 나무계단이 설치된 암릉 구간도 지나고 안개 속 멋진 노송들도 바라보며 나지막한 봉우리를 셀 수 없이
넘고 또 넘어서 간다.
얼마를 갔을까? 탄항산(炭項山, 851m)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불쑥 나타난다.
월항삼봉이라고도 불리는 탄항산은 뾰족한 봉우리 3개가 나란히 붙어있어 삼봉이라고도 하고, 산삼이 많이 나는
산이라고 해서 삼봉(參峰)이라고 한다.
주변에 산삼(山蔘)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 한들 어떻게 생긴지 모르니 그림에 떡이다.
생각난 김에 이번 산행이 끝나면 산삼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배워야겠다. 채취해서 내가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없고
공부도 하고, 혹여 운 좋게 산삼 몇 뿌리를 캐더라도 나 보다 산삼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생각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혹은 서너 명이 안개 낀 호젓한 능선을 걷고 또 걷는다.
산새 소리도 들리지 않고 풀 벌레며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떤 것도 생각을 방해하지 않고, 어떤 상상을
하더라도 방해 받지 않는다.
선명한 능선 길이 외길이니 길 잃을 걱정도 없고,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앞서가는 대원이 이런 저런 말을 걸어오지만 생각에 잠겨 하는 말을 정확하게 듣지 못해 건성으로 응답하며 따라
가기도 한다.
이렇게 하늘재에 도착한 시간은 13: 20분이다. 이화령에서 여기까지 10시간 40분 걸렸다.
2시간 동안 알바하고도 최근 백두대간 종주구간 중에서 가장 빨리 내려왔다.
문경 온천에서 충분한 온천 욕과 이어지는 뒤풀이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한다.
우중 산행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로 조령3관문에서 탈출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대원들이 부봉까지 올라갔다가
안전하게 완주했다. 올라가라면 올라가고 가지 말라면 가지 않는 대간 4기, 파이팅~~
점점 산을 닮아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오늘 산행을 시작할 때 개인적으로 내심 걱정이 많았다.
최근 몇 달 동안, 매 주말마다 쉴 틈 없이 계속된 장거리 산행, 해외 트레킹, 설악산 태극종주로 인하여 무릎과 발목,
발바닥의 피로 누적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오늘 산행 후에는 무거웠던 몸이 다소 가벼워져 안도의 한숨을 쉬어본다.
몸이 건강해야 좋은 친구들과 오래오래 산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몸은 자기가 잘 관리해서 오래동안 여기 저기 같이 다녀요. 저와 함께~ (끝)
마들, 거보님 사전 동의없이 사진을 올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도 대원님들 사진 몇장 찍었습니다만,
사진이 흐리고 맘에 들지 않아 올리지 않습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2011.08. 20
Mabre 마바르
▼ 안개속의 이화령 들머리
▼ 1시간20여분 알바 후에 조령샘에 도착
▼ ['하얀소'님 촬영]
▼ 신선암봉 전후로는 암릉으로 로프가 매어져 있는 곳이 40여 곳이 넘다.
▼ 고래등 바위를 지나는 '애뫼'
▼ 뒤쪽으로 안개가 피어 오르는 조령산이 보인다.
▼ 괴산군 연풍면 방향
▼ 신선암봉 오르기 직전 뒤쪽의 조령산 조망
▼ ['하얀소'님 촬영]
▼ ['하얀소'님 촬영]
▼
▼ ['하얀소'님 촬영]
▼ 화분 속에 심겨진 듯 보이는 멋진 소나무
▼ 이제는 조령산과 신선암봉이 함께 조망된다.
▼ 석문 사이를 통과하는 '마들'님
▼ 안개로 희미하게 부봉과 주흘산이 보인다.
▼ ['마들'님 촬영]
▼ 깃대봉 갈림길 이정표지목
▼ 새재로 내려가는 등로를 따라 성곽이 이어진다.
▼ 성황당
▼ 제3관문
▼
▼ 마역봉 오르는 등로 옆의 바위
▼ 마역봉(마패봉) 정상석에서 선두로 올라온 의정부 같은 지역구의 '아나사'님과
▼ 선두그릅 떼사진['하얀소'님 촬영]
▼ 북암문
▼ 괴목에서 '백갈매기'
▼ 선두 그릅의 여성산우들
▼ 일제시대의 수탈 현장-송진 채취를 위해 상처를 낸 흔적이 아직도 아물지 않은채 있다.
▼ ['하얀소'님 촬영]
▼ ['하얀소'님 촬영]
▼ 이 곳에 배낭을 벗어 놓고 부봉에 오른다.
▼ 맨 몸으로 오르기도 어려운 이 곳에 무덤이 있다.
▼
▼ ['하얀소'님 촬영]
▼ ['하얀소'님 촬영]
▼ 이 곳에서 좌측 철계단을 내려간다.
▼
▼ ['하얀소'님 촬영]
▼ 탄항상 정상['하얀소'님 촬영]
▼ 백두대간 유일의 모래사막이라나...
▼ 하늘재 다음구간 들머리
▼ ['하얀소'님 촬영]
▼ ['하얀소'님 촬영]
▼ ['하얀소'님 촬영]
▼ ['하얀소'님 촬영]
♬ 새벽아침 / 수와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