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차 11구간 (비재-늘재) ▲▲▲
o 산행일시 : 2011년 07월 01일(금) - 02일(토) (무박2일)
o 산행인원 : 그린산악회 산우님 38명과 함께
o 산행코스 : 늘재-밤티재-문장대-신선대-천왕봉-피앗재-형제봉-갈령삼거리-비재
o 산행거리 : 23.57km (종주누계거리 289.19km / 백두대간 거리 734.58km 39.37%)
o 산행시간 : 03시15분-14시28분 : 11시간13분(식사 및 휴식, 대기 1시간 5분 포함)
o 산행날씨 : 흐리고 안개, 습하고 무더움
▼ 산행 진행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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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 진행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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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5 늘재 들머리 출발
04:02 696봉 내리막 암릉 시작되는 지점
05:03 밤티재
07:50 문장대 08:05 출발
08:50 법주사. 경업대 갈림길
09:18 천왕석문
09:35 천왕봉
11:07 피앗재
11:54 형제봉 12:58 患友 도착 확인후 출발
13:10 갈령삼거리
13:30 장고개(구병산) 갈림길
13:42 못제
14:28 비재 날머리 도착
늘재에서 밤티재를 지나 문장대에 오르는 구간은 곳곳이 암릉으로 이어져 39명의 산우들이 통과하는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으며 문장대에 오르니 짙은 안개로 지척을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신선대휴계소에서 아침을 먹고 나서는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마치 습식사우나실을 걷는 것 같다.
땀을 많이 흘린 산우들이 지쳐가기 시작한다.
피앗재에서 형제봉의 오름이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다.
형제봉에서 몸이 안좋은 산우님이 발생했다는 무전을 받고 1시간 넘게 대기하여 산우님이 도착하는 것을 확인하고
비재로 출발한다. 물병도 비어가고, 가도가도 날머리는 나타나지 않는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내려서니 버스가 보인다.
아이스박스에서 맥주를 꺼내 서너잔 연거푸 들이켠다.
배낭을 비우고 펫트병 맥주를 5병을 넣고 내려왔던 깔딱을 홀로 오른다.
내려오는 산우 6명당 1병씩 꺼내주며 첫봉우리를 넘어 평평한 곳에서 산우들을 맞는다.
너무도 기뻐하며 반가와 한다. 맥주를...ㅋㅋㅋ
한 산우가 체력이 고갈되어 홀로 오기 힘들어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봉우리를 내려가니 완전 탈진한 산우와 그의
배낭까지 메고 오는 산우가 보인다. 손을 잡아 끌어 봉우리를 올라온다.
거리가 짧아 일찍 산행이 끝날줄 생각했는데 많은 인원이 암릉을 통과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고 높은 기온과
습도로 인해 두세시간 더 걸리는 바람에 장인의 추도예배는 다 끝난 뒤에야 도착하게 되었다.
[산행기는 북진을 함께하는 '대간길' 산방의 "마바르" 형님 후기를 허락을 받고 옮긴다]
❉❉❉ 속리산(俗離山)구간의 유감 ❉❉❉
-. 白頭大幹 북진 11차 (눌재~비재 21km)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일요일 아침, 노트북 자판을 두들긴다.
어제 산행의 무덥고 힘들었던 고통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생각나지 않고, 안개 낀 능선과 즐거웠던 순간만
오롯이 떠오른다.
백구대간 1구간을 시작할 때, 참석 인원이 너무 많아서 상당수가 멋 모르고 신청한 줄 생각했다.
따라서 몇 구간만 지나면 하나, 둘 슬며시 안 나올 줄 알았다. 두 구간을 하나로 합치고 지리산, 덕유산 종주 등
산길 40km를 12시간대로 몰아치면 최소한 대 여섯 명은 포기할 것으로 예상했다.
참석인원이 줄면 40인승 버스에서 28인승 리무진으로 편안하게 다니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이 잠자고 있던 이들의 혼(魂)을 깨울 줄 누가 알았으랴?
한 구간, 한 구간 힘든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했고, 종주 산행의 즐거움이 이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대원수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서 이제는 40인승도 모자랄 판이다.
이렇게 신바람 나는 굿판에서 함께 춤추는 사람들은「천문대장, 후미대장, 에코회장, 가을향, 효미, 오키, 반지,
쿠키여인, 여래향, 아끼라, 아나사, 홍원, 푸른향, 향수림, 나한수, 늘행복, 아카데미, 버팔로다, 기쁜우리, 정다운,
온당, 매뉴얼, 들풀, 백갈매기, 바위산, 미소맨, 고내리, 탱이하트, 거보, 개봉, 로하스, 비둘기, 하얀소, 유기택, 거목,
으뜸상수」그리고 저 마바르다. 그들은 오늘도 속리산으로 간다.
장마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신명나는 굿판을 벌리려 속리산으로 간다.
○ 속리산(俗離山 1,058m)의 전설
속리산(俗離山)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 보다 더 유명한 법주사(法住寺, 553년 창건)와 정이품송(正二品松) 정도이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문장대, 비로봉, 입석대, 천왕봉까지 떠올릴 것이다.
속리산은 신라시대 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 선생이 법주사 일대를 둘러보고
「도불원인인원도(道不遠人人遠道) 산비이속속이산(山非離俗俗離山)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려 하고, 산은 속세를 여의치 않는데 속세는 산을 여의려 하는구나」라고 읊은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또 다른 전설은 선덕왕 5년(784년) 진표율사가 속리산을 찾았을 때 밭갈이 하던 소들이 무릎 꿇고 엎드려 율사를
맞이했다 한다. 이를 목격한 농부들은 미물인 짐승들도 깨우치고 뉘우치는 모습에 감명받아 많은 사람들이 입산
수도하였다 하여 속세와 이별하여 떠나는 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찌되었던 대부분의 산들이 생긴
형상에 따라 이름이 정해졌다면 속리산은 산에서의 느낌에 따라 이름이 정해진 경우다.
오늘은 그 속리산을 지나간다.
서울에서 어둠 속을 달려 여기까지 왔으면 의당(宜當) 들러야 할 곳도 둘러 보지 못하고, 누가 볼세라 이른 새벽을
틈타 늘재(경북 상주시 화북변)에서 출발하여 능선을 타고 문장대에 오른다. 그 후 아무런 일도 없었듯이 신선대,
입석대, 비로봉, 천황봉도 지나고 형제봉과 갈령삼거리 지나서 상주시 화남면 비재까지 21km 남진한다.
○ 들어가지 말라 했는데~
경북 상주시 화북면 늘재(눌재) 03:15
오늘 속리산 종주 구간 21km중 6.8km는 출입통제구간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국립공원 속리산, 오대산, 설악산 권역 중 일부 지역은 자연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통제되어있다.
이번 구간을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국은 사욕(私慾) 때문에 들어가지 말라는 곳을
들어갔다. ‘백두대간 전구간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종주했다’는 그것 하나 때문에 이른 새벽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을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넘었다.
새벽이지만 날씨는 장마철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어서 후덥지근하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랜턴 불빛 따라 나방과 벌레들이 춤을춘다. 얼굴에 부딪히기도 하고,
오르막을 오르느라 자연스레 벌어진 입 속과 확장된 콧구멍 속으로 날아들기도 한다.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지만
허락 없이 들어온 형편이라 주인들 보고 떠나라고 할 수 없다.
이정표도 없고, 뚜렷한 길도 보이지 않는다. 랜턴 불빛은 짙은 안개가 삼켜버리고 몇 번이나 우왕좌왕하면서
겨우 찾은 길은 로프 하나 매어있지 않은 절벽이다.
이끼가 까맣게 붙어있고 바위에 매달려서 기어오르고 내려간다. 바위 틈새를 지날 때에는 숨을 못 쉴 정도로 배를
들이밀고, 썩은 통나무를 발판 삼아 기어오르고, 키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고 대로, 배가 나온 몸과 짧은 다리를
아쉬워하기도 하면서 혼자서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바위지대 대여섯 곳을 5시간 만에 겨우 통과했다.
많은 인원이 지나다 보니 통과시간이 평소보다 2시간 정도 더 지체되었다.
그러나 아쉬움과 찜찜함이 가슴에 가득 차고, 하찮은 조그만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규칙을 지키지 못한 회한(悔恨)이
밀려온다. 뻔뻔스럽지만 이 글을 통해서 나마 깊이 반성한다. 그리고 자연보호를 위한 적절한 출입통제는 전적으로
찬성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불완전한 통제가 오히려 자연을 더 많이 훼손시킬 수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사전 허가와
안내인의 인솔하에 개방시간과 출입 인원을 제한하는 방법 등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본다. 생각과 입장, 보는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르게 본다.
다르게 보이는 것을 같은 것이라고 강제하는 것 보다는 다름을 서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갑갑한 마음이 생길 때,
세상과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지은 김정협님의 「옆으로 보는 세상」시가 생각나 읊어본다.
옆으로 앉을 때
나는 편하다. 나는 자꾸 자세를 바꾼다
비스듬하게 비스듬하게
세상이 옆으로 보이고
시간이 옆으로 보이고
그대의 모습도 옆으로 가름해진다
각도에 따라 다소
동그스름하게 보이기도 한다.
~중 약~
기울어진 나
기울어진 세상
이대로 좋은 것인지
삶이 이대로 영영 굴절되는 것은 아닌지
길이 생각해볼 일이지만
아무일 아니라는 듯 바람은
또 다시 나를 스쳐 옆으로 지나가고
옆으로 앉을 때
나는 편안하다.
○ 문장대(文藏臺 1,054m)에 올라서니
엄청난 긴장감 속에 5시간 만에 암벽지대를 통과해서 문장대에 올랐다.
세조 임금과 유명한 역사적 인물, 시인, 묵객, 깨달음을 얻은 스님들과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섰던 바로 그 자리에
섰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뿌연 안개뿐이더라. 그 아름다운 자태를 규칙을 지키지 않은 우리에게는 보여 주기
싫은 모양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갈증과 허기라는 본능이 고개를 치켜든다.
문장대는 원래 암봉이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하여 운장대(雲藏臺)라 하였으나,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하고
있을 때 꿈 속에 어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 영봉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찾았는데 정상에 오윤삼강(五倫三綱)을 명시한 책 한 권이 있어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었다 하여
문장대(文藏臺)라 불리우게 되었다 한다.
속리산에 올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시를 읊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조선중기 성리학자 서경덕
(1489~1546)의 시를 소개한다.
지팡이 짚고 시 읊느라 다리는 절름거리나
행장은 간단하여 번거롭지 않네
티끌 속의 영욕을 사절하고는
만불 밖의 변화를 차지했네
산 빛은 사람의 기쁨을 열어주고
시냇물 소리는 세상의 원통함을 호소하네
유유한 아득한 예부터의 일들
홀로 서서 누구와 애기한단 말인가
○ 신선대 비로봉 입석대
문장대 표지석을 배경 삼아 단체사진을 찍자마자 걸음을 재촉한다.
신선대로 가는 길은 잘 뚫린 능선길이지만 무더위와 긴장감으로 소진된 체력이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암벽지대를 통과하느라 접어 두었던 스틱을 폈지만 스무개도 되지 않는 계단도 겁나고, 조그만 언덕도 부담스럽다.
벌써 몇몇 대원은 탈진 증세가 보인다.
겨우 신선대 휴게소에 도착해서 도시락을 열었지만 체력이 소진되어 입맛이 당기자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김치한가지라도 꿀맛이었겠지만, 얼음물에 밥을 말아보아도 밥알은 입안에서만 맴돌고 넘어가지
않고, 찬물만 당긴다. 휴게소 주인장은 자리 값 하라며 성화가 대단하다.
산행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할 수 없이 신선이 마셨다는 약주도 시키고,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물 500ml를 한 병당 2천원에 구입했지만, 억울하고 분한 심정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분한 마음에 빈 물병을 아무렇게나 팽개치고 배낭을 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와서 물이라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여 흩어진 물병을 다시 정리하고 길을 나선다.
배낭이며 옷이며 심지어 수건까지 땀에 젖어 축축하다. 땀인지 물인지 앉았던 자리에도 물기가 흥건하다.
천왕봉까지 가는 능선 길 약 2.4km는 얕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가는 길 내내 2m 가량되는 산죽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오늘같이 안개가 짙게 갈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날 산죽이라도 없었더라면 얼마나 허전했을까?
어쩌다 마주치는 등산객은 아는 사람 대하듯 반갑게 인사하며 지나친다.
기온은 올라가고 바람은 나뭇잎 하나 흔들지 못한다. 태양은 안개 속에 숨었지만 그 열기까지 식은 것은 아니다.
이정표는 천왕봉까지 300m 남았다고 한다.
천왕봉에 올라서 휴식하기로 작정하고 밀려오는 갈증과 쉬자는 유혹을 억누르며 발걸음을 옮긴다.
금방 나타날 것 같았던 천왕봉은 가도가도 보이지 않는다.
산죽 터널을 지나고 잡목지대와 자갈길, 절벽과 야트막한 바위도 넘어 2~3km는 걸었을 것 같지만 천왕봉은
보이지 않는다. 속은 기분이다. 분노가 밀려온다. 틀림없이 거리 측정을 잘못했을 것이라고 원망하며
기진맥진하여 천왕봉에 올랐다.
○ 속리산 최고봉은 천황봉(天皇峰)이 아니라 천왕봉(天王峰)이다
천왕봉 1,058m라고 새겨진 표지석을 확인하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등받이 없는 벤치에 들어 눕는다.
사진 찍는 것도 귀찮다. 그저 들어 눕고 싶을 뿐이다.
그래도 대원들이 건네주는 과일은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주는 대로 받아서 입 속에 우겨 넣는다.
오늘같이 무덥고 체력소모가 심한 날은 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퍼질러 앉거나 들어
눕는 것이 최고다. 이것은 나름의 체력을 안배하는 방법이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닌 모양이다. 사진 찍는 대원도 별로 없다. 다리에 쥐가 나고, 심장에 이상 신호가 오고,
심한 탈수로 인한 탈진 증세 등 아무 말 하지 않는 대원들도 고통스럽기는 매 한가지다. 무더위를 견디다 못해
겉옷을 벗는 대원도 있지만, 햇볕이 내려 쬐지 않는 것을 위안으로 삼을 수 밖에 없다.
분명코 천왕봉에 오르긴 올랐으나 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개 외에는~
천왕봉은 일본 총독부의 창지개명 정책에 의하여 1918년 천황봉으로 되었다가 2008년 본래의 이름인
천왕봉으로 되었다. 창지개명(創地改名)은 일본 총독부가 식민통치의 편의와 문화적 색체가 강한 지명을
의도적으로 격하시키기 위해서 실시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지명을 한자 동음이의어나 비슷한 말로 바꾼 것이다.
주로 왕(王)이었던 것을 왕(旺)이나 황(皇)으로 변경했다.
속리산 천왕봉(天王峰)을 천황봉(天皇峰)으로 가리왕산(加里王山)을 가리왕산(加里旺山)으로
설악산 토왕성(土王城)폭포를 토왕성(土旺城) 등으로 왜곡했다.
여기서 왕(王)과 왕(旺) 황(皇)의 차이는 분명하다. 왕은 임금 또는 군주 중에서 으뜸을 의미한다.
그러나 황(皇)은 일본의 천황을 일컬으며, 왕(旺)은 일(日)+왕(王)으로 일본 왕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것 외에도 녹색연합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런 지명의 22 곳에 이른다고 한다.
이름이야 어찌되었던 천왕봉은 문장대와 간발의 차이로 속리산 최고봉이 되었다.
○ 멀고도 먼 형제봉(828m)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
노랫말처럼 순이 찾아 가는 것이 아니라 비재까지 가야 한다.
그나마 2km 정도는 내리막길이라서 다행이다. 잔 돌이 깔린 끝도 없는 내리막길을 걸어간다.
내리막도 힘들긴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오르막보다는 낫다. 이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은 쏟아지고 갈증은 빨라진다.
전망이 보이지 않는 전망바위에서 잠시 체력을 보충하고 또 길을 걷는다.
천문대장이 저기 저 산 뒤에 볼록 솟은 산이 형제봉이란다. 저것이 형제봉이라면 얼마나 다행일까.
이제는 거짓말이라도 믿고 싶다. 장거리 산행을 하다가 보면 시야에 들어오는 산과 거리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올라서면 봉우리가 나타나고, 산 허리를 돌아서면 또 다른 봉우리가 나타날 때가 질리도록 지겹다. 오늘이 그렇다.
고만고만한 특색 없는 봉우리들이 수 없이 이어진다.
해발고도를 자기 이름인양 붙인 703, 725, 867 봉우리가 계속 이어진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작은 봉우리는 한 두 개 빼먹어도 괜찮을 법도 하지만 새알 품듯이 새끼 봉우리들을 줄줄이 끼고 있다.
야! 너희들은 덥지도 않냐?
이런 저런 망상으로 겨우 피앗재에 도착했더니 오르막이 병풍처럼 막아 선다.
어찌하리, 갈 수 밖에 없다. 오르막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숫자를 헤아린다.
내 자신에게 체면을 걸면서 무의식적으로 의미 없는 수를 헤아린다.
고개 들어 오르막의 끝이 얼마 남았는지 확인하는 것도 두렵다.
보고 실은 유혹을 참으며 한참 후에 고개를 들었지만 아직도 끝은 보이지 않는다.
바위를 타고 넘어 겨우 도착한 형제봉에는 먼저 도착한 대원들이 반긴다.
항상 선두로 달리던 들풀, 하얀소, 개봉 등 대원들이 뒤처진 대원들을 걱정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박수도 치고, 배낭도 받아주면서 보이지 않는 대원들 걱정도 하면서~
○ 갈령삼거리 지나서 남은 길 4.3km
몸은 더 쉬자고 붙잡지만 분연히 일어선다.
갈령삼거리에서 기다리던 고내리도 쉬어가자며 붙잡았지만 그냥 말없이 지나간다.
여기서 쉬면 다시 일어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파른 내리막엔 하얀 밧줄이 곳곳에 메어져 있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능선 길과 봉우리를 넘고 또 넘어 걸어간다.
힘든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다.
끓임 없이 떠들고 노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 한마디 없이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 쪽이다.
물 한 모금 마시며 제발 좀쉬자는 불맨 소리가 들려오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다.
조금 더 가서 바람 불어오는 시원한 그늘에서 쉬겠다며 계속 걷는다.
아무리 가도 바람이 부는 곳도 없고 시원한 그늘도 보이지 않는다.
벤치가 쭉 늘어진 못재에서 잠시 쉬어보지만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모르지만 순간적인 바람이 나뭇가지를 한차례 흔들더니 그것으로 끝이다.
마지막 휴식이니 마지막 남은 물 한 모금까지 들이키고 비재를 찾아간다.
이제는 포장 길도 보이고 마지막 봉우리도 눈앞에 있다.
봉우리에 올라서서 고개를 들어보니 눈앞에는 내리막만 보인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려오니 먼저 도착한 거보 대원이 시원한 맥주를 짊어지고 올라선다.
우리도 한 병 받아 들고서 시원한 자리를 찾아 둘러 앉는다.
시원한 맥주 한잔에 피로가 눈 녹듯 달아나고, 남은 길 걱정도 없다.
늘행복, 쿠키여인, 기쁜우리, 땡이하트의 노래소리 낭낭하고 마바르, 메뉴얼, 바위산의 어깨가 들썩인다.
때 이른 매미도 추임새를 넣어준다.
이것이 신명나는 굿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을 들으며 힘들었던 속리산 산행을 정리한다.
그대 사랑하는 난 행복한 사람
잊혀질 때 잊혀진대도
그대 사랑받는 난 행복한 사람
떠나갈 땐 떠나간대도
어두운 창밖에 앉아 창밖을 보다가
그대를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
이 세상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오늘 산행은 많은 인원과 더위 그리고 험난한 지형으로 당초 예상보다 3시간이 더 소요되어 13시간 만인
16:15분경에 전원 비재에 도착했다.
함께한 모든 님들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같이 걸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끝)
2011.07. 01
Mabre 마바르
▼ 들머리인 늘재에 있는 안내표지판 [촬영:'비둘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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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티재 [촬영:'풍운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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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릉지대가 시작되기 직전의 봉우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산우들 [촬영:'마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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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하얀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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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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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탱이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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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릉 위에서 오늘 처음 오신 '꾸지뽕' 산우님과 [촬영:고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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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틈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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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틈을 통과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며 [촬영:'하얀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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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하얀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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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끌어주고. [촬영:'하얀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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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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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과 함께 [촬영:고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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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 난코스, 39명이 통과하느라 시간이 엄청 지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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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마들'님]
▼ [촬영:'비둘기'님]
▼ [촬영:'비둘기'님]
▼ [촬영:'마바르'형님]
▼ 바위 사이를 빠져나와 줄을 타고 오르는 여자 산우님 [촬영:고내리]
▼ 부지런히 제 갈길을 가는 두꺼비 [촬영:'바위산'님]
▼ 바위틈 통과를 위해 배낭을 벗고 대기중인 산우님들 [촬영:'마바르'형님]
▼ 얼마만큼 날씬한가 테스트중 [촬영:'마바르'형님]
▼ 구멍 통과후 하강
▼ 문장대
▼ 문장대에 올랐으나 짙은 안개에 바로 앞도 보이지 않는다 [촬영:'바위산'님]
▼ 문장대에서 떼사진 촬영 [촬영:'마바르'형님]
▼ 짙은 안개속의 문장대 [촬영:고내리]
▼ 오늘의 최고봉인 속리산 천왕봉
▼ 신선대 휴계소에서 아침식사 [촬영:'바위산'님]
▼ 경업대 갈림길 이정표지목
▼ 엄마고릴라와 삐져서 돌아앉은 아기고릴라 바위 [촬영:'바위산'님]
▼ 사람 키 보다 웃자란 산죽길 [촬영:'바위산'님]
▼ 입석바위 [촬영:'하얀소'님]
▼ 바위를 기어오르는 카멜레온 바위
▼ [촬영:'하얀소'님]
▼ 무덥고 습한 날씨에 모두들 지쳐있는 모습
▼ 봉우리 하나를 오를 때마다 휴식을 취한다.
▼ 피앗재 [촬영:'하얀소'님]
▼ 상고암 갈림길 이정표지목
▼ 피앗재에서 형제봉 오르는 1.1km가 엄청 힘들다.
▼ 동갑내기 '미소맨'과
▼ 띠동갑인 '개봉'과
▼ [촬영:'하얀소'님]
▼ 형제봉에서 몸이 안좋은 산우님을 1시간 넘게 기다리며 [촬영:'바위산'님]
▼ 무척 힘든가 보다. [촬영:'비둘기'님]
▼ 갈령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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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제 설명안내판
▼ 못제 [촬영:'바위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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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소나무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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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날머리 비재에 도착
▼ 펫트병 맥주 5병을 배낭에 넣고 봉우리를 하나 넘어 산우들 마중 나가서... [촬영:'바위산'님]
▼ 마중산행을 마치고 '후미'대장과 '하얀소'와 마지막으로 하산 [촬영:'바위산'님]
▼ 보은으로 이동 사우나를 하고 한정식 식당에서 뒷풀이 [촬영:'바위산'님]
▼ 음식이 정갈하다. [촬영:'바위산'님]
♬ 길 / 조관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