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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차 13구간구간 (버리미기재-이화령) 본문

백두대간 /2차(11.02~12.05)

제13차 13구간구간 (버리미기재-이화령)

실미도 2011. 8. 1. 16:02
      ▲▲▲ 제13차 13구간구간 (버리미기재-이화령)▲▲▲ o 산행일시 : 2011년 07월 29일(금) - 30일(토) (무박2일) o 산행인원 : 그린산악회 산우님 37명과 함께 o 산행코스 : 버리미기재-장성봉-악희봉-은티재-지름티재-희양산-배너미평전-이만봉- 사다리재-평전치-백화산-황학산-조봉-이화령 o 산행거리 : 30.44km (종주누계거리 336.32km / 백두대간 거리 734.58km 45.78%) o 산행시간 : 02시50분 ~ 15시27분 : 12시간 37분 (식사, 휴식시간 포함) o 산행날씨 : 비 / 흐림 / 안개 산행 진행도1
      산행 진행도2
      고도표
      02:50 버리미기재 들머리 출발 03:15 장성봉 1지점 (119구조요청 지점 표지판) 암봉 통과 03:51 장성봉 05:39 악휘봉 갈림길 전 헬기장 06:08 악휘봉 갈림길(821봉) 07:08 은티재 07:21 주치봉 07:28 묘지(은티마을, 구왕봉, 악휘봉 갈림길 표지목) 08:03 구왕봉 08:47 지름티재 09:20 희양산 갈림길(직벽 로프구간 위) 09:31 희양산 정상 09:43 희양산 갈림길(직벽 로프구간 위) 10:15 배너미평전(계곡에서 세수) 10:43 963봉 갈림길(제8지점 119 신고지점 표지판) 11:10 이만봉 11:40 사다리재 12:32 평전치 13:21 백화산 14:04 황학산 14:49 조봉 15:27 이화령 날머리 도착 ☞ [산행기는 북진을 함께하는 '대간길' 산방의 "마바르" 형님 후기를 허락을 받아 옮긴다] ❉❉❉ 고요한 희양산(曦陽山)을 깨우는 사람들 ❉❉❉ - 白頭大幹 북진 13차 (버리미기재~이화령 34km)- 서울 중부지방을 강타한 집중호우의 상처가 참담하다. 그것도 대한민국 부의 중심지인 강남의 대표적인 생태공원인 우면산의 산사태와 주요 간선도로 침수, 도로유실 등으로 많은 인명피해와 이재민이 발생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산행을 한다는 것이 사전에 계획된 일이라 하더라도 찜찜한 마음까지 지울 수는 없다. 더군다나 중국 호도협~옥룡설산(5,596m) 트레킹(5박6일)을 갔다가 지난 월요일에 도착한 나는 여독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배낭 매고 집을 나서려니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이럴 때에는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집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이번 구간은 두 구간을 하나로 합친 관계로 출발시간도 1시간 당겨지고, 우면산 산사태 영향으로 출발지까지 사당역에서 양재역으로 변경되어 평소보다 1시간 30분이나 일찍 서둘러서 집을 나선다. 배낭 매고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미안한 마음은 흩어지고, 몸은 날아 갈 듯 가볍다. 양재역에서 10시 30분에 만난 대원들의 표정이 전부 나와 같다. 머리는 수해를 입은 이웃을 생각해서 자숙(自肅)하라고 당부하지만, 몸은 희열의 광기(狂氣)가 여과 없이 그대로 뿜어져 나온다. 이 삼복 더위에 피서는 고사(固辭)하고 어려운 구간을 둘로 합쳐서 생고생을 사서하는 나,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나만 미친 것이 아니라 오늘 같이 산행한 모든 대원들도 마찬가지다. ○ 뻔히 보이는 길을 빙빙 돌아가야 하는 구간  이번 구간은 버리미기재(473m)를 출발하여 장성봉(920m) 구왕봉(882m) 희양산(998m)을 거쳐 산성터에서 은티마을까지 한 구간, 다시 은티마을을 출발해서 배너미평전(887m) 이만봉(989m) 평천지(903m) 황학산 (920m)을 거쳐 이화령(539m)까지 두 구간으로 나누어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오늘도 우리들답게 한번에 간다. 구간 거리 34km 그리고 무더운 여름, 거리도 멀지만 산 높이에 비해서 오르내림이 아주 심하고 암릉 구간으로 유명한 희양산을 통과해야 되기 때문에 힘들고 험한 구간이다. 그리고 이번 구간은 영어 알파벳 N 자가 왼쪽으로 기울어진 모양이다. 버리미기재에서 악휘봉 갈림길까지는 정북 방향으로 올라갔다가 희양산까지 4시 방향 남쪽으로 내려온 후, 희양산에서 다시 시루봉까지 2시 방향 북쪽으로 올라가서 방향을 120도 틀어 백화산까지 남쪽으로 쭉 내려온다. 그리고 백화산에서 왼쪽으로 140도 방향 북서쪽으로 이화령까지 올라간다. 글로써 설명하기 어려우니 아래 지도를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시루봉에서 이화령이 건너편으로 뻔히 보인다. 직선거리로 3km도 안 되는 길을 13km 이상 빙빙 돌아 가야 하는 고통은 걸어보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리라. ○ 대원들은 어디로 갔는지 장성봉 정상석 표지석만 덩그러니 남았더라.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출발한 보람도 없이 사고로 인한 교통체증으로 예상 도착시간보다 늦은 02:50분에 버리미기재에 도착했다. 기상예보에는 비가 없었는데 여기는 비가 부술부슬 내린다. 우의를 입을 정도도 아니고, 후덥지근한 기온을 조금이라도 식혀줄 수 있을 것 같아 모두 그냥 출발한다. 40여명의 대원들이 조용히 잠든 숲을 깨워놓았다. 버스 엔진소리, 부산스러운 산행준비 소리, 인원 파악을 위한 번호 부치는 소리에다가 헤드랜턴 불빛까지 밝혔으니 제 아무리 깊은 잠에 빠진 숲도 깨어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등산로에 들어서자 마자 벌레와 나방들이 놀라서 날 뛴다. 깨알만한 것에서부터 애기 손바닥만한 나방까지 이마에 차고 있는 랜턴불빛을 향해서 돌진한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느라 숨은 점점 가빠오고, 입은 자연스레 벌어지고 콧구멍이 확장대지만 얼굴을 향하여 달려드는 나방 때문에 어찌할 수 없다. 입을 벌리는 순간 크고 작은 나방들이 언제 입 속으로 들어올 지 모른다. 손을 휘젓고, 선두그룹에 풀숲을 건드리지 말라고 소리질러 보지만 소용 없다. 후미에 가까워 질수록 크고 작은 나방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난다. 나방과 전쟁을 치르느라 힘든 줄 모르고 정상부근에 올라서니 나방은 온데간데 없고, 나무 사이로는 안개가 몰려오고, 빗방울에 나뭇잎도 후드득거린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앞사람의 불빛을 확인하며 발 밑만 바라보고 올라간다. 내 바로 앞은 쿠키여인 그 앞은 회장님, 능선에 올라서는 순간 이들의 불빛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래도 짙은 안개 속에 등산로가 직진방향으로 뚜렷하게 나있어서 아무런 의심 없이 그 길을 따라 가는데 올라가야 등산로가 끝없이 내려간다. 고개를 쳐들고 불빛도 찾아보았지만 온 사방이 검은 안개로 뒤 덥혀 있다. 인적 소리에 귀 기울여 보지만 적막강산(寂寞江山), 무엇인가에 홀린 기분이다. 앞사람을 따라 잡으려고 발걸음을 빨리 하며 내려가는데 등산로에 한 가운데 거미줄 한 가닥이 처져있다. 약간 의심스러웠지만 부지런한 거미도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다시 내려가는데 또 거미줄이 한 가닥 처져있다. 순간적으로 알바(길을 잘 못 들어 섰다는 등산객들의 은어)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신경이 곤두섰다. 너무 많이 벗어났다. 바로 뒤에 따라오던 후미대장 불빛도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새벽 4시경, 비는 부술부슬 내리고 짙은 안개는 랜턴 불빛마저 삼켜버렸는지 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정신 없이 내려왔던 길을 올라서서 문제의 삼거리 갈림길에 올라섰지만 나뭇잎에 가려 오른쪽으로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는다. 길은 외길, 그 길로 정신 없이 달려가니 올라가야 하는데도 길은 내리막이다. 다른 길이 없으니 그 길을 무작정 내려가니 장성봉 위치도 안내판 표시가 (4)번에서 (3)번으로 줄어든다. 그렇다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온 것이다. 안개와 어둠이 짙게 깔린 숲 속, 연락할 방법도 대안도 없다. 잠깐 동안이나마 눈을 감고 작년 이 길을 내려왔던 흔적을 머리 속에서 찾아본다. 희미한 기억의 한 조각을 떠 올리며 알바를 시작했던 그 능선에 올라서니 왼편으로 나뭇가지에 조그만 푸른색 리본이 매달려있다. 안도감이 가슴속에 밀려온다. 시간상으로 3~40분 지체되었고, 나를 찾아 기다릴 대원들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도 걱정하면서 길을 따라 올라간다.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뛰다시피 장성봉(920m)에 올라섰지만 40여명의 대원들은 흔적도 없고, 비에 젖은 정상석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사라진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에 외로움이 와락 밀려온다. 침착하자. 냉정하자. 다짐하며 불 한 모금 마시고 막장봉 방향으로 길을 나선다. 랜턴 불빛은 안개 때문에 5m 전방도 보이지 않으니 길 바닥에 있을 앞선 대원들의 흔적들을 찾는다. 다행히 비가 내려 땅이 젖어 방금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과 미끄러진 흔적들이 가는 길 곳곳에 있는 것을 보고 나서 마음의 평정을 되 찾는다. 이제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기로 한다. 아침 먹을 때 까지는 없어진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것이니 내 페이스대로 걸어가기로 한다. 막장봉 삼거리서 잠시 헷갈렸지만 출입금지 안내판을 뚫고서 길을 간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있지만 1시간 가량 헤매느라 땀으로 내의까지 다 젓은 상태라서 우의를 입기에는 이미 늦었다. 동여맨 머리띠에는 비가 섞인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리고, 몸의 열기를 식혀주는 빗방울이 오히려 시원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쉬지 않고 달린 덕분에 암릉을 지나서 809봉 내리막을 내려서는 순간 앞선 대원들의 불빛이 줄줄이 꼬리친다. 반가움과 안도감이 온몸에 퍼지고 뒤돌아 보는 후미대장에게 태연하게 대형 알바했다고 당당하게 신고한다. 자랑이라도 하듯이, 무전이 오고 가고, 박수 소리가 들린다. 이제서야 갈증과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렇다고 쉬자고 할 수 없어서 그냥 따라 간다. ○ 주치봉 지나서 구봉봉까지  악휘봉 올라가기 전, 사거리 안부 헬기장에서 2시간 30분만에 처음으로 휴식을 취하고 길은 간다. 날은 이마 밝았지만 아직도 어둑어둑하다. 굵어진 빗줄기를 온 몸으로 맞으며 821봉에 올라선다. 대간 능선에서 15분 거리에 비켜선 악휘봉(樂輝峰 845m)은 바위 봉우리와 노송(老松), 입석(立石)이 멋있지만 오늘은 가야 할 길이 멀기 때문에 아쉽지만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다. 여기서부터 은티고개, 주치봉, 오봉정고개를 지나 구왕봉까지는 암릉구간으로 경사도도 심하고 수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한다. 멋있는 소나무가 바위와 어우러지고 비 안개까지 깔려있어 한 폭의 동양화가 펼쳐지지만 우리에게는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 속을 영화 감상하듯이 그냥 휙 휙 지나칠 수 밖에 없다. 산행을 시작한지 4시간 30분이 지나고 시간은 7시 30분, 시장기가 몰려온다. 뒤에서 아침 먹고 가자고 소리치지만 대장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냥 지나친다. 오늘 아침 식사 장소인 구왕봉까지는 그냥 갈 모양이다. 가야 할 능선에는 바위봉우리들이 줄줄이 이어져있다. 가까이 있을수록 선명하게 보이고 멀리 있는 봉우리는 바위와 봉우리가 구름 속에 반쯤 잠겨있다. 서로 비슷해서 어느 것이 구왕봉인지 알 수는 없지만 모두들 가까이 있는 봉우리를 구왕봉으로 믿고 싶어한다. 오봉정고개를 넘어서면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많다. 넓은바위, 마당바위 등 스무명 정도는 충분히 식사할 수 있는 평평하고 전망이 좋은 바위도 있지만 그냥 지나친다. 우리끼리 여기서 먹고 가자고 꼬드기는 사람, 배고파서 스틱 들 힘도 없다고 소리치고 엄살 부리지만 다 소용없다. 선두그룹은 이들의 볼멘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앞서서 달려가고 있다. 구왕봉인 줄 일고 죽을 힘을 다하여 올라서면 아니고 그러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겨우 구왕봉에 올라섰더니 선두그룹은 벌써 아침 식사를 끝내고 있는 중이다. 알바에 따른 체력소모와 땀으로 뱃속은 꼬르륵거리지만 입맛은 영 당기지 않는다. 그래도 떨어지는 빗물에 밥을 말아 김치를 와작와작 싶어 삼킨다. 먹기 싫어도 먹어야 움직일 수 있다. 밥이 뱃속에 도착하기도 전에 배낭을 대충 꾸려서 다시 일어선다. 구왕봉(九王峰, 898m)은 희양산을 동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산으로서 희양산의 유명세에 가려 별로 알려지지 않는 산으로서 희양산과 구왕봉이 서로 조망하기에 좋은 산이지만 두 산 사이에는 급경사와 암릉을 끼고 있어 오르내리기가 험난하기로 유명하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사이다. 전설에 따르면 희양산은 산아래 봉암사를 보호하는 산이고 구왕봉은 봉암사 터에 살던 용이 도망가서 피신한 산으로 알려져 있으니 가까운 산은 아니다. 구왕봉을 내려오는 길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험한 길이다. 바위를 돌아내려 왔다가 올라가고, 미끄러운 바위를 굵고 가는 밧줄에 매달려 겨우 내려서면 아주 가파른 흙 길로 이어진다. 내리막 끝은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지름티재다. ○ 희양산은 혼자 있기를 원한다.  지름티재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감시초소와 통나무 울타리가 희양산과 구왕봉 방향으로 길게 처져있다. 울타리 안에는 간이 막사도 세워져 있고, 오고 가는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비닐 창도 만들어 놓았다. 이 곳을 지키는 스님은 보이지 않지만 이곳을 드나드는 탐방객들이 얼마나 소란스러웠기에 이런 구조물까지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 금할 수 없다. 그렇다. 이곳은 봉암사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하여 세운초소인 것이다. 희양산(曦陽山)은 하나의 바위덩어리로서 백두대간의 단전에 해당한다. 햇빛 희(曦), 볕 양(陽) 글자 그대로 뜨거운 불기운이 솟아나는 산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산아래 봉암사(鳳巖寺)는 불교 조계종단의 직할 사찰 중 유일한 종립(宗立) 특별선원이다. 일년 중 사월초파일 단 하루만 공개하고, 일반인의 출입이 364일 통제되는 직지사 말사다. 이곳 봉암사는 전국 각지에서 선(禪) 수행을 위한 최고의 선승들이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은 채 수행을 정진하기 위해 찾는 정신적, 상징적 절로서 유명하며, 이곳 선원의 수행자들은 갓 들어온 사미승이건 30여 년을 이곳에서 수행해온 선원장 스님이건 완벽한 공동체 생활을 한다고 한다. 하루 세 번의 공양과 세 번의 예불 그리고 14시간 이상의 좌선, 울력(공동노동)은 모든 수행자가 해야 한다. 그리고 하루 2시간만 수면하는 특별정진(오전 1시기상, 오후 11시 취침), 4시간 수면하는 가행정진(오전 2시 기상, 오후 10시 취침), 한시도 눈과 허리를 붙이지 않고 끓임 없이 좌선과 보행을 하는 수행으로 수면시간이 없는 용맹정진을 번갈아 가면서 계속한다고 한다. 또한 이 절은 성철스님과 청담, 자운, 월산, 혜암 등 고승들이 「부처님 법 대로만 살아 보자」고 결의 한 봉암사 결사로도 유명하다. 조계종의 정신적인 핵(核)으로서 스님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찾으려는 정신적인 고향이며, 천 년이 넘는 역사 동안 수많은 위협과 시련을 거치며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리고 미래에도 그 자리를 지킬 것으로 확신한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엄숙해야 할 곳을 지나고 있다. 가능하면 이곳을 지나지 않는 것이 예의이겠으나 백두대간 능선에 놓여있으니 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의 발길까지 막을 수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스님들은 대간길을 통제하고, 대간을 타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피해서 산행을 계속하는 숨바꼭질이 계속되었지만 이제는 서로의 절충으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의 사정을 잘 몰라서 큰 소리도 떠들면서 산행함으로써 스님들의 수행을 방해하고, 어떤 사람들은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요즘 우리사회가 너무 소란스러운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제는 산, 바다, 어디에서나 장소불문하고 시끄럽고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럽다. 오히려 조용하고 고요한 것이 이상스러울 정도다. 이제는 깊은 산 속에서도 풀벌레소리, 매미소리, 물 흐르는 소리,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도 온갖 소음에 묻혀 쉬 들을 수 없다. 어릴 적 살았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어디로 사라지고 없다. 학교에서 배운 「라빈드라나트의 타고르」시 「동방의 등불」을 떠올리며 봉암사에도 고요한 적막이 오랫동안 머물러 수행자들 모두가 깨달음을 얻기를 염원하며 희양산을 오른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동쪽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 없고 머리는 높이 쳐 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전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아주 가파른 오르막을 바위 사이도 지나고, 목책을 끼고 오르다가 7부 능선부근에서 좌측으로 얼마간 돌아 올라 가면 수직에 가까운 절벽 사이로 밧줄이 몇 가닥 매어져 있다. 밧줄은 비에 젖어 흙이 묻어있고, 잡으면 물이 줄줄 흘러내려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바위에는 빗물까지 흘려내려 발 딛기도 쉽지 않다. 겨우 바위에 올라서서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몰골을 보니 옷은 영락없는 거지 꼴이다. ○ 산성터와 배너미평전도 지나서  9시 40분, 안개인지 비구름인지 산꾼들이 말하는 가스인지는 모르지만 온 사방이 뿌옇다.  910봉 지나 배너미평전까지 가는 등산로는 멧돼지들이 파헤쳐 놓아 마치 사람들이 밭갈이를 위해서 흙을 갈아 엎어 놓은 듯하다. 의식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등산로 한가운데 여기저기에는 멧돼지들의 배설물이 널려있다. 대간꾼들의 침입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표시인 듯도 하다. 배너미평전(분지)에서 잠시 쉬면서 계곡물에서 흘린 땀을 훔친다. 땀과 비에 젖은 몸이라 옷이 젖을까 걱정 할 것도 없이 흐르는 물에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으면서 잠시나마 더위를 식혀 내린다. 질퍽거리는 평전을 가로질러 말없이 걸어간다. 우리 대원들 외에는 가는 사람도 오는 사람도 없다. 이런 날씨, 이 시각에 여기 있는 사람이 정상이 아닌 것이다. 시루봉 갈림길을 지나면서 비구름 속에 잠겨있어 보이지도 않는 이화령 고개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계곡건너 3km 전방에 있는 이화령. 가로질러 간다면 길어야 2시간이면 갈 거리를 13km 아성을 둘러서 5시간 이상 결려 가야 한다니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다. 평전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면 능선은 뽀족뽀족한 칼 바위와 자갈, 그리고 암릉이다. 그러다가 밧줄이 메어져 있는 바위협곡도 오르내리고, 멋진 소나무와 어우러진 바위도 구경하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 이만봉 지나서 봉우리, 봉우리를 넘어서 백화산으로  이제는 배낭도 점점 가벼워진다. 물 3리터, 포도쥬스 0.5리터, 오란씨 0.5리터와 자두 10알을 가져왔지만 모두 먹고 마시고 이제는 물 1리터 정도만 남았다. 믿어 지지는 않지만 옛날 임진왜란 당시 이 골짜기로 2만가구가 피난 와서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만봉에서 얼마 남지 않은 물을 몇 모금 마시면서 지금부터는 남은 거리를 생각해서 물도 계산해서 마시기로 한다. 대신 같이 가는 대원들이 건네주는 과일 등은 염치없이 주는 대로 받아먹는다. 이만봉 정상석에는 다른 정상석에는 볼 수 없는 이정표까지 표시되어있다. 가야할 백화산 4.7km가 검은 대리석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한 시간 반 안에 갈 수 있는 거리라서 암릉 능선을 부지런히 오르내린다. 곰돌봉도 지나고 사다리재도 지나고 886봉도 지났지만 백화산은 보이지 않는다. 1시간 정도 왔지만 아직도 백화산까지는 1시간이상 더 가야 한다고 한다. 가는 능선에서 오늘 처음으로 부부로 보이는 등산객 두 사람을 보았다. 인사도 건성으로 하고 길을 간다. 뇌정산 갈림길을 지나 앞을 바라보니 큰 봉우리 두 개가 가로막고 있다. 이제 다 왔구나. 뒤에 봉우리가 백화산이겠지 생각하고 오르막을 오르고 또 올랐지만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이 금방 밝혀진다. 앞의 봉우리에 올라서니 봉우리 뒤로 수많은 봉우리가 올망졸망 이어져 다가온다. 어느 것이 백화산인지 알 수 없다. 이런 된장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단련이 되어 포기하는 것은 빠르다. 백화산도 버리고, 황악산도 버리고, 이화령 가는 것도 포기한다. 그냥 발걸음이 가자는 대로 간다. 오르막이 있으면 오르고, 암벽이 있으면 기어오르고, 밧줄이 메어져 있으면 잡고서 올라가고 또 내려오고 여기 저리 피어있는 중나리와 원추리 꽃을 바라보며 걷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바람불어 좋고, 바람이 숨죽인 사이 땀이 비 오듯 흘려 내려도 모자 창 끝으로 떨어지는 땀방울을 보면서 걷고 또 걷는다. ○ 백화산, 황학산만 지나면 이화령은 금방인 줄 알았는데 오늘 구간 중 가장 높은 1063m의 백화산 정상에 올라섰지만 그냥 지나친다. 오늘은 날씨도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하고 흐려서 사진 찍는 대원들도 거의 없고찍어 달라는 사람도 없다. 나도 무거운 카메라를 배낭에 모셔두고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모두들 힘들고 귀찮은 것이다. 백화산에서 내리막을 한참 내려오면 조그만 봉우리가 나타난다. 바위 색깔이 누르스름한 색이라서 여기가 황학산인 줄 알았더니 밧줄을 타고 봉우리에 올라서니 아니란다. 다시 내리막길을 지나서 914봉을 지나 나타나는 조그만 언덕 같은 봉우리가 황학산이다. 백화산과 황학산은 전국에 동명이산이 많고, 여기에 있는 산은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황학산에서 이어지는 내리막 길은 두 세 명이 손잡고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넓은능선 길이다. 아래로 아래도 끝없이 이어져 있다. 아무리 내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키가 2~30m 정도되는 상수리나무와 잎깔나무(이깔나무, 낙옆송) 숲도 지난다. 그 숲 바닥에는 억새처럼 생긴 가는 풀들도 자라고 있다. 물이 흘러 넘치는 연못을 지나서 나타나는 헬기장에는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이름도 없는 조그만 봉우리를 지나면 새가 많아서 불렸을 법한 조봉(鳥峰)이 나타난다. 조봉에서 이화령이 금방인 줄 알았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가는 길은 내리막이지만 끝이 없는 내리막이다. 몸이 내리막에 적응 할 무렵에는 어김없이 지도에도 없는 야트막한 봉우리가 나타나서 괴롭힌다. 내리막에 풀린 팔 다리는 한 발자국 올라가는 데도 끙끙거리는 소리가 절로 난다. 여기 저기서 끙끙거린다. 벌써 13시간 이상의 산행으로 온 몸이 굳어져가고 관절은 마다마다 근육은 근육대로 아우성친다. 산허리로 돌아가는 길이 나와야 이화령인데, 그 놈의 길은 가도가도 보이지 않는다. 「김현식」의 「이별의 종착역」을 흥얼거리며 지루한 내리막 길의 고통을 달래본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길 나그네 길 안개 깊은 새벽 나는 떠나 간다. (중략) 고달픈 이 나그네 길 비바람이 분다. 눈보라가 친다. 이별의 종착역 마음을 비우려고 노래도 흥얼거려 보지만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봉우리를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미간이 절로 찡그려진다. 조금만 올라가면 그토록 기다리던 산허리를 끼도 도는 길이 나타난다는 희망에 죽을 힘을 다 내어 보지만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이어지는 봉우리를 감고 도는 길도 경사도 심하고 길기도 하다. 같은 길을 밤에 오를 때에는 아주 편안하게 올랐지만, 상황에 따른 느낌과 고통의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이야 누가 알겠는가? 이화령 도착시간 16: 30분, 삼복더위에 34km를 13시간 40분만에 도착했다. 습도가 높아 다소 무더웠지만 오락가락한 비 덕분에 무사히 완주한 나 자신과 같이 산행한 대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일찍 도착하여 시원한 맥주를 매고 마중 나온 거보와 개봉, 수박 선물을 해주신 기사님, 몸 아프다는 핑계로 중간에서 하산(본인들은 죽어도 「탈출」이 아니라고 주장하여)하여 맛있는 옥수수를 준비하여 주신 매뉴얼, 로하스, 땡이하트 감사합니다. 이 정도의 서비스가 있다면 다음에 탈출할 때에도 하산으로 표기하겠습니다. (끝) 2011.07. 30 Mabre 마바르 버리미기재 들머리를 출발하는 산우님들
      악휘봉 갈림길 전 헬기장에서 처음으로 휴식을 갖는다.
      [비둘기님 촬영]
      악휘봉 갈림길. 아쉽지만 악휘봉에는 들리지를 못한다.
      이번 구간의 유일한 철계단
      [비둘기님 촬영]
      [하얀소님 촬영]
      비가 내려 암릉 구간이 매우 미끄럽다.
      표지석에는 879m, 뒤편의 표지판은 887m. 구왕봉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한다.
      멋진 소나무에서 선두그룹의 '개봉', '반지', '아나사', '디마'님
      구왕봉에서 지름티재 내려가는 길의 전망암에서 안개에 숨어버리는 희양산을 배경으로 '하얀소'님과
      오늘 처음 참여한 '지리산 태극종주'를 두번이나 완주했다는 닉이 '박군'이란다.
      지름티재로 내려가는 등로는 암릉으로 가팔라서 주의를 요한다.
      희양산 오르는 직벽의 로프구간으로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우회하기로한 희양산을 선두 셋이서 오르며 바라본 봉암용곡과 봉암사 전경
      나와 '개봉', '하얀소', 셋이서 희양산에 오른다. '개봉' 아우와 함께
      암릉을 오르는 '개봉' 아우
      사다리재. 오늘 처음 참여해 오랫만에 빡센 산행을 한다는 '디마'님
      [하얀소님 촬영]
      평전치
      4~5봉을 넘어 도착한 오늘의 최고봉인 백화산
      뒤돌아 본 백화산. 이 곳 부터는 육산으로 길이 아주 좋아 속도를 낸다.
      황학산
      [하얀소님 촬영]
      오늘 처음 선두그룹 떼 사진을 찍는다.
      울창한 낙엽송림 사이의 부드러운 등산로
      습지도 있다.
      봉우리라 하기에는 체면이 서지 않는 등로 옆 조봉의 정상석
      날머리 이화령에 도착
      [하얀소님 촬영] 선두 도착후 2시간이 넘어서 후미가 도착, 단체사진을 촬영
      ♬ 백두대간의 노래 ♬